Ⅱ. 이사야는 어떤 인물인가?
Ⅲ. 이사야가 활동했던 연대기
Ⅳ. 이사야서의 구조
Ⅴ. 이사야의 저자
1) 단일 저작설로 보는 견해와 근거
2) 제 1.2.3 이사야로 보는 견해와 근거
Ⅵ. 이사야서에 대한 연구사
Ⅶ. 이사야서의 신학
본서는 책의 주인공인 예언자 본인의 이름을 따라서 ‘이사야’라고 이름하였다. 히브리 성서에서는 “예사야후”, 혹은 “예샤야”라고 되어 있다. 이 명칭은 ‘구원’이라는 뜻의 ‘예솨’와 여호와를 가리키는 ‘야후’ 혹은 ‘야’라는 단어가 합쳐진 이름으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인역(LXX)에서의 명칭은 ‘헤사이아스’이며 벌게이트역(Vulgate)은 ‘Esaias’ 또는 ‘Isaias’ 라 부른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도 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2. 이사야는 어떤 인물인가?
이사야는 약 주전 750년에서 700년까지 예루살렘에 살면서 활동한 예언자였다.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로 기록되어있으며(1:1), 탈무드에 의하면 이사야는 아마샤 왕의 동생, 웃시야 왕의 사촌 등으로 설명됐다.
역대하 26:22와 32:32에서 이사야는 웃시야 왕과 히스기야 왕의 서기관이었다고 기록된 것은 그가 왕의 공식 연대기를 담당한 서기관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여선지자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고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이름하였다. 그 이름들은 각각 “남은자가 돌아오리라”, “신속하게 노략질하고 약탈이 임박하게 이뤄질 것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아들들의 이름은 당대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들을 대언하는 징조와 표적으로 간주되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친 이집트 정책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을 나타내는 표적으로 옷을 벗고 예루살렘을 돌아다니라는 소명을 받는다(주전 714년경, 20장). 그리고 그는 주전 710년에 산헤립의 포위 공격으로부터 예루살렘의 구원을 예언했고(37-38장, 왕하 18:13-19:37), 히스기야가 치명적인 질병에서 회복된 사건의 증인이었으며(38장, 왕하 20:1-11), 바벨론에서 파송된 므로락발락단의 사절단을 환대한 히스기야에게 야웨의 비난을 전달했다(39장, 20:12-19).
위경인 『이사야의 승천』(The Assumption of Isaiah)에 의하면 이사야는 므낫세 치세 기간 중에 (696-642 BC) 통나무 안에서 톱으로 몸이 절단되는 참사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히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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