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클랜드 영유권 분쟁의 배경
2)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상황
3) 사우스 조지아 섬 사건
2. 포클랜드 전쟁의 진행 과정과 결과
1) 포클랜드 전쟁의 진행 과정
2) 결과
3. 전쟁 종결부터 현재까지의 상황과 미래에 대한 예측
1) 전쟁 종결부터 현재까지
2) 포클랜드의 미래
4. 분쟁에 대한 분석
1) 분쟁의 성격
2) 분쟁의 수준별 분석
1. 배경
포클랜드 전쟁은 1982년 4월 2일부터 같은 해 6월 14일까지, 포클랜드에 대한 영유권을 두고, 포클랜드 섬과 사우스 조지아 및 사우스 샌드위치 제도에서 벌어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포클랜드 영유권 분쟁의 배경과 당시,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국내 사정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1) 포클랜드 영유권 분쟁의 배경
포클랜드의 영유권 분쟁을 살펴보면, 네 가지 배경을 볼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지리적인 배경이다. 포클랜드는 지리적으로 영국보다는 아르헨티나에 가까운 섬이다. 이로 인해 섬에 대해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 영국에 대해 아르헨티나는 언제나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에서는 48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영국과는 약 8천마일 이상 떨어져 있어, 아르헨티나는 항상 영유권에 대한 불만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배경은 역사적 배경이다. 포클랜드는 맨 처음 1502년 이탈리아인인 아메리고 베스쿠치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이어서 세계 일주에 성공한 마젤란 일행이 1520년 섬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였다. 하지만 두 일행 모두 섬에 상륙하지 않았으며, 최초로 섬에 상륙한 사람은 영국인이었던 존 스트롱 선장이었다. 이후 1764년 프랑스 사람이었던 부갠빌이 이주민을 이끌고 들어왔으나, 1766년 스페인에게 이곳의 지배권을 넘겨주었다.(혹은 빼앗겼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1766년 영국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되었으며, 이 때문에 영국과 스페인은 1771년 전쟁을 벌일 위기까지 갔으나, 경제적 문제로 영국이 1774년, 스페인이 1811년에 섬에서 철수하면서 무인도가 되었다. 이후 1816년 아르헨티나가 독립하면서 이 스페인이 가지고 있던 섬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왔음을 주장하였고, 1826년 이를 공식화하여 1828년 정식으로 군대를 파견하였다. 하지만 1833년 영국은 포클랜드 섬이 자신들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군을 파견하여 이곳을 강제 점령하였고, 아르헨티나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에게 저항을 하지 못하고 섬을 빼앗겼다. 이후, 100여 년 동안 영국의 지배가 이어지다가 1946년부터 탈식민지의 시대가 도래되고, 1965년에 있었던 UN 총회에서 식민지의 독립을 추구하는 결의가 채택되면서 아르헨티나는 1973년부터 다시 이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UN의 권고로 시작된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아르헨티난 큰 반발을 하게 되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번갈아서 이 섬을 지배해봤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양국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세 번째로는 주민들의 자율권이 또 하나의 배경이 된다. 1833년 영국군이 들어와 아르헨티나 군과 시민들을 몰아낸 후부터 포클랜드 섬의 주민들은 대부분 영국계였으며, 이로 인해 1965년의 UN 총회 이후에도 주민들은 섬이 계속해서 영국령으로 남았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해왔다. 이러한 점은 영국이 지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이 섬을 지키고자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 영국의 상징적인 인물이던 엘리자베스의 둘째 아들 ‘요크 공작 앤드루’가 참전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국이 군사력을 사용하여, 포클랜드의 실효 지배를 억지로 얻어냈으므로, 이러한 배경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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