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포클랜드/말비나스 제도의 영유권 다툼의 역사
3. 포클랜드 전쟁
(1) 전쟁의 시작_아르헨티나의 정치적 불안
① 격변하는 정치와 군부의 등장
② 전쟁으로의 확대
(2) 전쟁의 전개와 결말
①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점령
② 영국 및 국제사회의 대응
③ 사우스조지아 섬 탈환
④ 스탠리 공항 폭격
⑤ 헤네랄 벨그라노와 셰필드의 격침
⑥ 산 카를로스 만 상륙
⑦ 아르헨티나 군의 항복
4. 포클랜드 전쟁의 수준별 분석
5. 현황 & 앞으로의 전망
6. Q & A
(1) 전쟁의 시작_아르헨티나의 정치적 불안
① 격변하는 정치와 군부의 등장
아르헨티나는 20세기 들어 정치적 대격변을 겪는데, 1916년부터 1976년 사이에 대통령이 무려 22번이나 바뀐다. 특히, 1930년대부터 등장한 군부 세력은 실권과 재집권을 거듭하다 - 이 사이 유명한 페론과 그의 아내 에비타가 등장한다 - 1976년 각군 사령관으로 이뤄진 구테타 세력이 집권하면서부터 아예 군부 지들끼리 돌아가며 대통령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우선 육군 중장이었던 '비델라'가 76년부터 81년까지 5년간 대통령을 차지한다. 그를 이어 '비올라'가 대통령에 오르나 그 해 12월을 넘기지 못하고 내분이 일어나 해군제독과 육군대장의 지지를 받은 '갈티에리' 참모총장이 81년12월 대통령에 오른다. 이들 정치군인집단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구테타로 집권한 군부가 세계 여느 나라에서 으레 그렇게 하듯, 좌익세력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무수한 시민들을 잡아 가두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행방불명 시킨다. 이 기간 동안 어떠한 기록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숫자가, 최소한 1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비옥하고 광대한 토지에서 나는 농축산물을 기반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 공급하는 식량을 거의 혼자서 감당하며 194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5대 부국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던 이 나라는, 그렇게 반복되는 군부의 쿠테타와 그로 인한 불안정한 정치, 치솟는 실직율, 이반하는 민심, 인기위주의 경제정책 등으로 인해 1981년에는 이미 인플레이션이 600%에 이르고, GDP는 끊임없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수렁 같은 경기침체를 장기간 겪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없다. 연일 계속되는 시민들의 시위 속에 취임한 '갈티에리' 대통령은 뭔가 강력한 돌파구를 필요로 했다. 충분히 강력해서 내부의 모든 불만을 잊게 만들고, 지금 나라가 희망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할만한 획기적이고 강력한 뭔가가 필요했던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