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 답사보고서-‘사자’가 아닌 ‘산자’를 위한 공간, 국립서울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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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립서울현충원 답사보고서-‘사자’가 아닌 ‘산자’를 위한 공간, 국립서울현충원-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국립서울현충원의 역사
2.1 설립까지의 경위
2.2 설립 이후의 확대
3. 과잉된 충의 공간
3.1 충에 내포된 논리
3.2 시대에 따른 충의 이용
3.2.1 근대
3.2.2 박정희 시대
4. 항일과 친일의 동침
4.1 조경한의 안장
4.2 친일파의 안장
5.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국립현충원은 근대 민족국가 성립 이후에 등장한 근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전근대 시대에도 국립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왕이나 왕비가 죽으면 묻히는 ‘능’과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세자나 정식으로 왕비 책봉을 받지 못한 왕의 생모 등을 모시는 ‘원’이 있었다. 능이나 원과 같은 왕조식의 국립묘지는 매장되는 사람의 신분이 보여주듯이 아무나 묻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반면, 지금의 국립묘지는 '나라를 위해 바친 목숨'일 경우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다. 국립묘지가 이처럼 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나라를 위해’라는 것, 즉 ‘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정문을 통과하면 ‘충성’분수대가 보인다. 그리고 그 뒤에는 ‘겨레’의 마당, 그 너머로 ‘현충’문과 ‘현충’탑이 있다. 이외에 ‘충혼’당, ‘현충’탑, ‘충열’대, 경찰‘충혼’탑, 포병장교‘충혼’비 등의 추모시설이 있고, 조형물 및 휴게시설에는 ‘충성’분수대, ‘충성’거북상, ‘현충’지, ‘호국’종, ‘충혼’승천상 등이 있다. 이쯤 되면 현충원이 근대 이래로 강조하는 이 ‘충’이라는 것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권기봉,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알마, 2008
유병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서」, 『민족21』제28호, (주)민족21, 2003. 7.
한홍구,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의 공간 국립서울현충원」, 『초등우리교육』제 228호, 우리교육, 2009, 2.
하고 싶은 말
A+ 받은 보고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