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고전] 영회고적오수 -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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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의 고전] 영회고적오수 -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회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작품 해제
蜀主征吳幸三峽 (촉주정오행삼협) 유비가 오를 치러 삼협으로 행차했다가
崩年亦在永安宮 (붕년역재영안궁) 죽는 그 해에도 영안궁에 있었네.
翠華想像空山裏 (취화상상공산이) 빈 산에 휘날리던 황제의 깃발은 사라지고
玉殿虛無野寺中 (옥전허무야사중) 왕의 전각은 사라지고 들판의 절만 남았네.
古廟杉松巢水鶴 (고묘삼송소수학) 유비의 묘 주변 삼나무와 소나무에 학이 깃들고
歲時伏臘走村翁 (세시복납주촌옹) 복날과 납일마다 촌로들이 찾아오네.
武侯祠屋常隣近 (무후사옥상인근) 제갈량의 묘가 언제나 가까이 있어
一體君臣祭祀同 (일체군신제사동) 한 몸을 이룬 임금과 신하가 제사도 함께 받는다네.

2. 역사적 배경 - 이릉전투
이 시는 이릉전투 이 후, 유비의 죽음을 떠올리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릉전투는 관도 대전, 적벽 대전과 함께 삼국지 3대 대전의 하나이다. 적벽대전의 공로와 형주 임대에 대한 손권측과 유비측의 입장대립으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 문제는 협약을 통해서 해결되었으나 추후에 유비가 한중을 공격하면서 오군과 위군의 협공에 의해 관우가 목숨을 잃고, 이에유비는 분노한다.
하고 싶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