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양심적 병영거부 수용자에 대한 차별행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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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가인권위원회]양심적 병영거부 수용자에 대한 차별행위 개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언

Ⅱ. 국가인권위원회

Ⅲ.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Ⅳ.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위의 Ⅵ)에 대한 사견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서언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희생을 통해서 달성되는 것이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만들어 일당독재 정치를 폈다. 그 당시 많은 학생들과 국민들이 반발했고 투쟁하면서 피를 흘렸다. 10·26 사태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 차지철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때 당시 광주에서 학생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었는데, 김재규는 그 사태의 성격을 단순한 대모가 아니라고 보고 그들의 소리에 귀기울일 것을 주장했으나 차지철은 "2·3백명만 죽이면 잠잠해 질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박정희도 차지철의 말에 손을 들어 주었다. 만일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지 않고 차지철의 말대로 민중에게 발포를 해서 사태를 진압했다고 한다면, 그래서 더 이상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독재에 맞서 용감히 투쟁하고 피흘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수준의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류는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해 왔으며 지금도 그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류가 생존하는 한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일제 식민지 하에 있을 때 3·1운동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한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쟁을 택하지 않고 그대로 현실에 순응하고 살았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약에 이러한 역사들이 없었다고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