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euthanasia)는 사전에 따르면 편안하고 수월한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불치병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그 이상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죽여준다는 뜻에서 ‘자비사(mercy killing)’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안락사에는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자기를 죽여줄 것을 요청하는 자발적인 안락사, 그런 요청은 없었으나 죽는
사람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해 다른 사람이 목숨을 끓어주는 비자발적 안락사가 있다.〔1〕
일부의 도덕주의자들은 죽도록 허용하는 것과 자비로운 죽임간의 구별은 그 기술과 관련해서 볼 때 상당히 모호하다고 주장한다. 어느 경우나 환자는 작위에 의해서건 부작위에 의해서건 죽게 된다는 점에서 동일하며 죽음에 이르는 길이 실제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절차를 통해 이같은 죽음이 전문가들의 손에서 혹은 그들의 기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방식은 안락사 운동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그런데 안락사 운동에서는 죽을 권리뿐만 아니라 죽임을 당할 권리까지도 주장한다.〔2〕
그러나 다른 일군의 도덕주의자들은 죽도록 허용하는 것과 자비로운 죽임간에는 중요한 도덕적 구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을 하는 자들은 안락사 운동에서 죽음을 대면하도록 한다기보다는 죽음을 조종하고자(engineer) 한다고 주장한다. 안락사는 어떤 사람을 가능한 빨리 죽도록 하기 위하여 죽는 과정을 건너뛰어 버리고자 할 수도 있다. 즉, 안락사는 삶과 죽음간의 간격을 무너뜨림으로써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3〕
안락사 운동의 배후에 있는 충동(impulse)은 죽음이 이처럼 비인간적인 무한한 과제가 되고 있는 시대에 이해할만한 것이다. 그러나 안락사 운동은 우리의 죽음이 발생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우리 인간의 능력을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선의 죽음이 항상 갑작스러운 죽음인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해 사전에 통보를 받고 죽음에 대비할 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은 화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또한 장차 유족이 될 사람들은 미리 슬픔을 겪게 되면 그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 감소될 수도 있다. 정신과의사들의 관찰에 의하면 사랑하던 사람을 사고로 잃게 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질병으로 장기간에 걸쳐 고통을 겪은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이러한 슬픔과 상실감을 회복하는 데 훨씬 힘들다고 한다.〔4〕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