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군의 역사
2) 중국군의 군사력
2.본론
1) 중국의 군사 정책의 변화
(1) 군사 교리의 변화
(2) 삼불 정책
(3) 중국군의 현대화
2)군사 정책의 변화 이유
(1) ‘신 안보 전략’의 수립
(2) 미국의 군사 정책
(3) 일본의 군사 대국화
(4) 대만의 무장력 강화와 독립화 추세
4.결론
1)중국 인민해방군의 역사
중국군은‘인민 해방군’이라 칭한다. 중국혁명 기수로서의 전통을 가지며 오늘날에는 중국의 군사력으로서 국방의 근간을 담당하고 있다.
1927년 8월 1일 난창폭동[南昌暴動]으로 봉기한 혁명세력이 그 모체가 되며 주더[朱德]·저우언라이[周思來]·허룽[賀龍] 등이 리더였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8월 1일이 건군기념일이다.) 난창폭동은 실패했지만 이것을 계기로 하여 공농혁명군(工農革命軍)이 조직되었고 같은 해 9월 추수폭동에 실패한 후 징강산[井岡山]을 혁명의 근거지로 삼은 마오쩌둥[毛澤東]의 혁명세력과 합체하여 공농홍군(工農紅軍)으로 개편했다. 특히 28년 4월에 조직된 홍군제4군(軍長은 朱德, 黨代表는 毛澤東)은 각지에 흩어져 있던 홍군과 함께 세력권을 신장시켜 나갔으며 31년 루이진[瑞金]에 중화소비에트임시공화국을 수립했으나 장제스[蔣介石]군의 포위로 34년 10월 역사적인 대장정에 나서게 되었다. 이 장정 도중인 35년 1월 중국공산당 준이[遵義]회의에서 마오쩌둥이 군의 지도자 저우언라이를 대신하여 당내 지도권을 확립하고 실제적으로는 도피였던 장정을 <혁명을 위한 파종의 기회>로 삼아 1만 2000㎞의 장정을 완료하고 35년 가을 산시성[陝西省] 북부에 새로운 혁명근거지를 세웠다. 이때부터 홍군은 유격전의 전략·전술의 특징인 <마오쩌둥군사사상(毛澤東軍事思想)>에 근거한 사상무장을 했고 37년 7월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국민혁명군제 8로군과 신편제 4군으로 개편되었으며 국공합작하에서 항일전쟁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리하여 정규군 90만과 민병 220만을 거느리고 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항일전쟁 승리 후에 국공(國共)이 다시 분열되었고, 46년 7월 이후에는 전면적인 국공내전(제3차 국내혁명전쟁)에 돌입했으며 47년 10월 인민해방군으로 개칭한 다음 총반격으로 전세를 전환시켜 48년 가을부터의 요심(遼瀋)전투와 회해(淮海)전투 그리고 평진(平津)전투 등 3대전투를 거쳐서 국민당군을 압도하고 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게 되었다.
정규군과 지방군 그리고 민병으로 이루어진 인민해방군은 <삼대규율(三大規律)·팔항 주의(八項注意)>를 건군의 윤리로 삼았고 계급제도가 없는 <인민의 군대> 였다. 50년 가을에는 6·25에 인민지원군으로서 참전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중국 인민해방군은 중국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은 현제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중국 군사 정책의 방향’ 남은영
‘중국 안보 정책 결정과 군의 역할’ 이태환
‘21세기 중국의 대국화 신 안보 전략’ 제 19권 2호 김재관
‘한반도의 선택-부시 MD구상, 무엇을 노리나’ 삼인 출판, 정욱식외
‘당대 중국 군사론’ 화랑대 연구소, 이병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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