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명화는 문학, 음악, 발레 등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예술은 정치적 문제와 부딪쳐 순수한 러시아적인 예술의 형태와 편하지 않은 관계로 어울려졌다. 여기서 러시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발레인데 발레의 발전에 러시아는 공헌했다고도 할 수 있다.
러시아 발레의 역사
발레는 다른 귀족적인 춤과 함께 러시아에 들어왔다. 1734년 발레학교가 세워졌고 이를 계기로 발레가 발전하여 서유럽 발레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피터대제(大帝)가 무용을 민중의 오락으로 채용한 서구화(西歐化) 정책에서 비롯되어 예카테리나 여 황제 때 발레 예술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 발레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들은 모두 러시아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었다. 러시아 발레를 크게 발전시킨 사람은 프랑스인 M.프티파였다. 그는 수석(首席) 무용가를 거쳐 안무가가 되었는데, 프티파는 러시아 발레에 뚜렷한 민족적 형식을 도입하였고 62년 안무가에 임명되어 죽을 때까지의 약 40년간 러시아 발레계에 군림하였다, 특히 프티파는 차이코프스키의 협력으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을 만들어냈다. 한편 이전에 러시아를 방문했던 E.체케티는 그곳에 머물러 A.파블로바와 V.니진스키 같은 무용가들을 길러냈다.
이와 같이 외국인의 손에 의하여 다져진 러시아 발레는 이제 러시아인(人)의 힘으로 발전하는 시기를 맞게 되었다. 먼저 20세기에 들어와 ‘러시아발레단’을 조직한 S.P.디아길레프는 마린스키극장의 젊은 무용가들을 이끌고 1909년 파리 공연의 막을 열어, 근대 발레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29년 그의 병사(病死)로 러시아발레단이 해산될 때까지 세계의 발레를 이끌어나갔는데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발레의 대가는 어떤 형태로든 이 발레단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여기에 첫손으로 꼽히는 사람이 파리 공연의 작품을 안무한 M.포킨이다. 그는 《라 실피드》 《알미드의 관(館)》 《클레오파트라》 《이고르공(公)》 등 최초의 파리 공연 때의 안무뿐만 아니라 《셰헤라자데》 《불새[火鳥]》 《페트루시카》 《장미의 요정》과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발레단의 혜성 같은 존재인 니진스키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남성 무용가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유럽 관중에게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최고의 무용가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그는 공중에서 정지해 있을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국적인 개성과 T.카르사비나 및 포킨의 작품에 가장 충실한 표현을 해냈다. 또한 그는 안무에도 손을 대어 《목신의 오후》 《유희》 《봄의 축제》를 만들었다. 러시아발레단의 마지막 안무가는 뉴욕시티 발레단의 창립자인 G.밸런친이다. 그는 《뮤즈의 주교(主敎) 아폴로》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