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푸에블로호 납치배경
II. 푸에블로호의 임무와 피납경위
III. 노출된 위기관리의 허점
IV. 협상을 통한 해결모색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되고 긴장도가 높은 지역의 하나로서 휴전선 155마일을 경계로 150만명 가량의 군대가 대치하는 상황이 휴전 이후 지금까지 줄곧 계속되어 왔다. 그동안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과 여러 위기들을 겪었지만, 다행히도 대규모 무력층돌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몇 번의 중대한 위기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를 긴장시켰던 일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서 1958년 1월 23일 북한에 의해 발생한 '푸에블로'호(USS Pueblo) 납치사건과 1976년 8월 18일의 '판문점 미루나무사건'(도끼만행사건)은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증대한 일들이었다.
I. 푸에블로호 납치배경
1968년 1월 23일 북한은 원산부근 동해의 공해상에서 미해군의 정보선 '푸에블로'호를 납치함으로써 한반도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레이건을 비롯한 분노한 많은 미국인들은 푸에블로호 및 선원들을 구출하는데 필요하다면 무력응징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존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쟁의 수행으로 인해 또 다른 전쟁을 치를 수 없는 형편이었고, 80명 선원의 안전한 구출도 어렵게 되기 때문에 보복공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미국이 11게월의 협상과 인내 끝에 푸에블로호의 승무원들을 석방시키는데는 성공했으나 초강대국의 위신이 크게 손상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을 당시의 국제환경은 냉전무드가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지만, 아직 데탕트 분위기가 표면화되기 전이었다. 미국은 월남전에 깊이 개입되어 어려움을 겪었고, 국내 ․ 외의 반전여론으로부터 큰 압력을 받고 있을 때였다. 한편 북한의 소련과의 관계는 1965년 이래로 크게 호전되어 있었고, 문화혁명의 와중에 있었던 중국과는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대결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과의 관계는 급증된 북한의 대남무력도발로 인하여 휴전 이래 최악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었다. 휴전선의 군사분계선 남방에서 북한 측이 도발한 심각한 사건만을 보더라도 1966년의 37건에서 1967년에는 무려 445건으로 급증되었으며, 한 국내에서 도발한 사건도 1966년의 13건에 비해서 1967년에는 121건이나 기록되었다. 이렇듯 악화된 상태에서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공대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다가 실패한 엄청난 사태가 발생하여 남 ․ 북한관계가 극도로 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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