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근대 공교육 사상의 발달
II. 공교육 제도의 성립
1. 영국
2. 프랑스
3. 미국
1) 근대 공교육 사상의 발달
중세 이후 유럽의 학교는 종교적인 학교였고, 교회학교였다. 따라서 교육도 종교적인 일에 속하는 것이었고, 교회의 일이었으며, 교직과 성직은 동일한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 국가에서는 국가가 교육을 관리하였으나 그것은 세속적인 통치로서가 아니라 종교적인 통치의 일부로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점차 국가의 종교적인 중립성을 부르짖는 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는 “유토피아“(1516)에서 국가는 신앙의 문제에 간여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밀톤(John Milton, 1608~1674)도 국가로부터 교회를 분리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으며, 국가는 모든 종파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국교 그 자체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밀톤의 이러한 주장은 프랑스에도 전해져 베일(P. Bayle, 1647-1706)은 신앙은 어떠한 국왕에게도 예속되지 않아야 하고, 신앙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로크(Jo Locke)도 “관용에 관한 서한”(1689)에서 양심의 권리를 요구하였고,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자기의 종교를 타인에게 요구할 권능을 부여받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울러 그는 구가는 법률이나 형벌에 의하여 신앙을 강제할 수 없으며, 국가는 각자의 생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을 임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로크의 이러한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사상은 볼테르나 루소에 의하여 이어져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보급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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