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십칠회 미염공지온삽시호 송공명사방조천왕
第十八回 林衝水寨大?火 晁蓋梁山小奪泊
제십팔회 임충수채대병화 조개양산소탈박
당시하관찰여형제하청도 저정은자 시관사신상적 비아파래잠니 후두재유중상 형제 니차설저과인여하재니편대리
后? [h?u?tou] ①뒤 ②후 ③그 뒤에 ④안
당시 아우 하청을 관찰하며 말했다. “이 은자는 관청에서 상으로 준 것으로 내가 너에게 속여준 것이 아니니 뒤에 다시 중상이 있다. 아우 너는 이런 무리를 어디에서 네 편대에 넣었는가?”
只見何?去身邊招文袋內摸出一個經摺兒來, 指道:「這?賊人都在上面。」
지견하청거신변초문대내막출일개경습아래 지도 저과적인도재상면
招文袋 [zh?o w?n d?i] 古代一??在腰?上?文件或?物的小袋子
단지 하청은 신변에 문서넣는 주머니안에서 한 구겨진 것을 꺼내 지칭하여 말했다. “이 무리 도적은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何濤道:「?且說?的寫在上面?」
하도도 니차설즘적사재상면
하도가 말했다. “네가 어찌 여기에 썼다고 말하는가?”
何?道:「不瞞哥哥說:兄弟前日爲賭博輸了, 沒一文盤纏;有一般賭博的, 引兄弟去北門外十五里, 地名安樂村, 有個王客店內湊些碎賭。爲是官司行下文書來:着落本村, 但凡開客店的, 須要置立文薄, 一面上用勘合印信;每夜有客商來歇息, 須要問他『那裏來?何處去?姓甚名誰?做甚買賣?』都要抄寫在簿子上。官司察照時, 每月一次, 去里正處報名。爲是小二哥不識字, 央我替他抄了半個月。當日是六月初三日, 有七個販棗子的客人, 推着七輛江州車兒來歇。我却認得一個爲頭的客人, 是?城縣東溪村晁保正。因何認得他?我比先曾?一個賭漢去投奔他, 因此我認得。我寫着文簿, 問他道:『客人高姓?』 只見一個三?鬚白淨面皮的?將過來, 答應道:『我等姓李, 從濠州來販棗子, 去東京賣。』我雖寫了, 有些疑心。第二日, 他自去了。店主帶我去村里相賭, 來到一處三叉路口, 只見一個漢子挑兩個桶來。我不認得他。店主人自與他?叫道:『白大?, 那裏去?』 那人應道:『有擔醋, 將去村里財主家賣。』 店主人和我說道:『這人叫做白日鼠白勝, 也是個賭客。』 我也只安在心裏。後來聽得沸沸揚揚地說道:『黃泥岡上?的販棗子的客人, 把蒙汗藥麻?了人, 劫了生辰綱去。』 我猜不是晁保正, 却是兀誰?如今只拿了白勝, 一問便知端的。這個經折兒, 是我抄的副本。」
송강의 난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며 《송사》 등 기타에 약간의 기록이 있으나, 전설화되어 남송·원의 2대를 통해서 강담이나 연극의 재료가 되었다. 그 단계를 볼 수 있는 사료나 작품이 얼마간 전해지는데 그중에서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 전후 2집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강석(講釋) 대본식의 전기적(前期的)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북송 멸망 전후의 애사(哀史)를 엮은 속에 '송강 36인'의 모반의 전말이 이미 한 편의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형태로 삽입되어 있다. 이와 같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명나라 초에(1400년 전후), 시내암의 손으로 독본소설로 꾸며져서 처음에는 사본으로 유포되었다고 추정되는데, 다시 정리되어 가정 연간(1522-1566)에 <충의수호전>(忠義水滸傳) 100회의 간행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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