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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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천문대설
먼저, 가장 보편적이고 정설로 알려진 천문대설이다. 이 견해는 전상운, 남천우, 이종호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전상운은 한국과학기술사에서 1966년에는 다목적관측대의 견해를 밝혔고 75년 개정증보판에서는 상설천문대로 보기 어렵다고 변경했다. 73년에 이용범의 수미산설, 74년에 김용운의 주비산경설이 제시되었다.
그럼 먼저, 전상운의 견해를 75년 판으로 알아보자.
첫째는 혜성의 출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날 때, 혼천의와 같은 기구가 특설되어 관측에 임하고, 24절기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성좌의 위치를 관측하는 개방식 도움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근 노인들은 첨성대를 比斗(북두칠성에 다른 별을 비교한다는 뜻)라고 부르기도 하며 그 부근의 마을을 ‘비두골’ 또는 ‘비두거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첨성대가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은 모양을 가져서 계절과 태양의 위치에 관계없이 해그림자를 측정하여 시간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4계절과 24절기를 확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가운데의 출구는 춘추분에 태양이 남중할 때 출구를 통하여 태양광선이 바로 대 안의 밑바닥까지 완전히 비칠 수 있는 위치라고 한다. 그래서 동하지에는 창문 아랫부분에서 완전히 광선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세 번째, 첨성대는 신라 천문 관측의 중심지라는 것이다. 신라 천문 관측에서 자오선의 표준이 되고, 동서남북의 4방위의 표준이었다고 한다. 대 위의 정자석이 정확히 8방위를 가리키고 출구가 정남방향인 것이 그 근거이다.
참고문헌
삼국유사, 일연 저, 최남선 역, 서문문화사, 1997
삼국사기, 김부식 저, 최호 역, 홍신문화사, 1994
동사강목 2권, 안정복 저, 민족문화추진회 역, 민족문화추진회, 1966
한국과학기술사, 전상운, 정음사, 1976
현대과학으로 다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 이종호, 새로운 사람들, 1998
신라 과학 기술의 비밀, 함인영, 삶과 꿈,
천년의 왕국 신라, 김기흥, 창작과 비평사, 2000
한국사 새로 보기, 신복룡, 풀빛, 2001
북한 향토사학자가 쓴 개성이야기, 송경록, 푸른 숲, 1998
유물의 재발견, 남천우, 학고재, 1997
한국사 특강, 박성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0
첨성대의 구조와 주비산경, 김용운, Korea Journal, 1974
첨성대존의, 이용범, 진단학보,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