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파리의 모습 - 나폴레옹 시기를 중심으로
혁명력 제 8 년 브뤼메르(안개의 달) 18-19일(1799.11.9-9), 코르시카 출신 장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는 당시의 총재들을 사퇴시키고 입법부를 해산했으며 새로운 통령정부를 수립했다. 통령은 보나파르트을 포함해 사임했던 두 총재 시에예스, 피에르, 로제 뒤코 3명이었으나, 그 뒤 보나파르트가 정권을 독점했다. 권력을 잡은 후 그는 말한다. “시민들이여, 대혁명은 그것을 시작한 원칙에 정착되었습니다. 이제 혁명은 끝났습니다.”
갓 30세가 된 보나파르트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으나 사람들은 언제나 승리를 거둔 그를 믿었으며 그가 질서를 잡아 평화를 되찾고, 혁명이 거둔 정치적․사회적 성과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주리라 기대했다. 그는 놀라울 만큼 지적이고 결단력이 있었으며 지칠 줄 모르고 일했지만 야심이 너무 컸다. 혁명 덕분에 그처럼 일찍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므로 혁명의 아들로 여겨졌고 그 자신도 이 점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혁명의 아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18세기의 아들이었으며 가장 잘 깨우친 전제군주였다. 그는 국민주권․일반의지․의회토론 같은 것을 믿지 않았고 인간의 이성 자체보다 이성을 발휘하는 것을 더 신뢰했다. 또 무력이 뒷받침되기만 하면 계몽된 확고한 의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었고 대중을 경멸하면서도 두려워했으며 여론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경찰력의 강화와 전국적인 스파이망의 조직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폴레옹의 시의는 “모든 것이 국민을 위해 이루어지지만, 국민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로 이 사상을 요약했다.
E.M 번즈, 『서양문명의 역사 3』, 소나무
김복래, 『재미있는 파리 역사 산책』, 북폴리오
콜린 존스,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시공사
필립 아리에스, 미셸 페로 엮음, 전수연 옮김, 『사생활의 역사 4』, 새물결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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