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박물관역사] 제3장 르네상스

 1  [서양박물관역사] 제3장 르네상스-1
 2  [서양박물관역사] 제3장 르네상스-2
 3  [서양박물관역사] 제3장 르네상스-3
 4  [서양박물관역사] 제3장 르네상스-4
 5  [서양박물관역사] 제3장 르네상스-5
 6  [서양박물관역사] 제3장 르네상스-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서양박물관역사] 제3장 르네상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162년에 로마의 학 칙령은 트라야누스(Trayanus 53~117)의 원주를 “절대로 파괴하거나 훼손해서는 안되고 이 세상 종말까지 로마인들의 명예를 위해서 지금의 상태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선포했다. 이 칙령은 서양 문명사상 역사적인 기념물을 보존하려는 최초의 시도임에 틀림없다. 사실 중세의 안내 책자로, 방문객들을 성당과 마찬가지로 고대의 기념물로 안내했던, “로마의 기적들(Mirabilia urbis Romae)”이 증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고대의 화려함에 관한 기억이 로마에서는 한번도 상실된 적이 없다. 만약에 고딕풍이 14세기의 이탈리아를 침몰시키지 않았다면 르네상스는 보다 더 일찍 도래했을 것이다.
13세기의 황제 프레데리크 2세(Frederick Ⅱ)는 고대 조각상의 모조품을 만들게 명령했는데, 이는 후에 니콜로 피사로의 예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피사의 두오모를 위한 제단을 만들고 있던 니콜로의 아들 죠반니는 그의 거대한 자제의 여신상을 만드는데 카피톨린 신전의 비너스 여신상의 자세를 차용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기독교와 회교(이슬람교)의 화해를 통해서 상이한 문화의 종합을 시도했던 황제는 또한 시칠리의 아우구스타의 발굴을 후원했다. 그러나 우리가 16세기의 오르시니 가문을 찬양하는 사람의 주장을 믿는다면 죠르다노 오르시니 추기경은 12세기말에 로마에 진귀품의 케비네트를 만들어 그것을 뒤에 고대 로마를 기념하는 공공 박물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피렌체에서는 현대 문학 운동이 고대의 문학에서 그 원천을 발견했으나 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는 고고학에 관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