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의 황제 프레데리크 2세(Frederick Ⅱ)는 고대 조각상의 모조품을 만들게 명령했는데, 이는 후에 니콜로 피사로의 예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피사의 두오모를 위한 제단을 만들고 있던 니콜로의 아들 죠반니는 그의 거대한 자제의 여신상을 만드는데 카피톨린 신전의 비너스 여신상의 자세를 차용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기독교와 회교(이슬람교)의 화해를 통해서 상이한 문화의 종합을 시도했던 황제는 또한 시칠리의 아우구스타의 발굴을 후원했다. 그러나 우리가 16세기의 오르시니 가문을 찬양하는 사람의 주장을 믿는다면 죠르다노 오르시니 추기경은 12세기말에 로마에 진귀품의 케비네트를 만들어 그것을 뒤에 고대 로마를 기념하는 공공 박물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피렌체에서는 현대 문학 운동이 고대의 문학에서 그 원천을 발견했으나 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는 고고학에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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