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의 장르적 성격과 '한문단편'
▷부(富)에 대한 관심과 서민의식의 성장
▷몰락양반의 궁핍상과 삶의 전환
▷봉건체제의 모순에 대한 항거와 그 지향
▷야담의 문학사적 의의와 한계
참고문헌
조선후기 사회의 해체 과정은 전국면에 걸쳐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를 가능케한 기본동력은 생산력의 괄목할 만한 발전에 있다. 그 가운데 이앙법·이모작의 확산, 시비법의 발달, 품종개량 등 농업기술상의 변화를 우선 꼽을 수 있다. 또한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상업작물의 재배가 점차 성행하고, 이것들은 장시에서 상품으로 팔려나갔다. 농업 경영상의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농민층 분화를 초래하였다. 일부 농민들이 부농층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반면, 다수의 농민들은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심지어 임노동자나 유민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농업 내부의 관계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상업·수공업·광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했다. 더욱이 전국 각지의 산물과 재화가 도시로 집중되고, 토지로부터 축출된 상당수의 유민 또한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만오천 호에 불과하던 17세기 중엽의 서울 인구가, 100년만에 거의 세 배나 되는 사만 여호로 늘어나게 된 상황은 이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서울은 돈을 가지고 살아가고, 팔도는 곡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던 남공철의 말처럼, 서울은 돈을 매개로 분주하던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야담의 연구 시각』이강옥
『어우야담 연구』이경우
『고전문학연구』임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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