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 민족을 위한 그의 저항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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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준하 - 민족을 위한 그의 저항정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금년은 장준하가 타계한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8월 17일이 기일이다. 해마다 그 이틀 전인 8․15광복절이면 ‘사상계’ 동인들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그의 묘소를 참배한다. 장준하는 20대였던 젊은 시절 일제하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조국 광복을 위해 몸바칠 결심으로 낯선 중국 땅에서 광복군에 참여했다. 목숨을 내놓은 고된 훈련을 받으며 때를 기다렸으나 일본의 무조건 투항으로 우리 민족은 갑작스런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렇게 된 해방은 도리어 조국의 분단과 혼란을 가져다준 결과가 되었다. 이후 장준하는 혼란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를 바로 세우고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투철한 민족자주 정신과 기독교적 순교정신이 오직 조국을 위하여 산 그의 힘이었으며, 그는 끝내 그렇게 조국에 그 삶을 바쳤다.
첫 번째 그의 저항정신은 일제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기를 돌베개 창세기 28장 10~2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
라고 하였는데, 일제의 군대를 탈출하여 중원에서의 2년을 그는 스스로 나의 돌베게라고 수기에 적고 있다. 1944년 7월 7일 장준하는 일제의 쓰카다부대를 탈영한다. 유여곡절끝에 중국군 유격대에 들어가 거기서 김준엽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불로하(不老河)강변에서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조국 광복에 대한 결의를 한다. 그러던중 중앙군과 팔로군의 전투를 겪으며 중국인들의 동족상잔을, 그것도 일본이라는 적을 눈앞에 두고 벌이는 전투를 경험하며 한심해한다. 그곳을 떠나 중경까지 6천리길을 가던 도중 임천에 한국인 부대가 집결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곳의 중국 중앙군관학교 임천분교에서 한국광복군 훈련반과정에 입소하게 된다.
참고문헌
1. 장준하, “돌베개”, (서울, 세계사, 1992)
2. 박경수, “장준하, 민족주의자의 길”, (서울, 돌베개,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