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사] 동방교회(500년이후)종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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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사상사] 동방교회(500년이후)종교회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배경
Ⅱ.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제 5차 회의)
Ⅲ. 제6차 세계 교회 회의
Ⅳ. 니케아 종교 회의 (제 7차 회의)
Ⅵ. 맺음말
참 고 문 헌 및 검색
본문내용
Ⅰ. 배경
주후 70년경 기독교회 중심은 희랍 세계로 옮겨졌다. 5세기에 서 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으로 인해 멸망하였다. 서방 교회가 다시 동방 교회에 대항하여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12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서방 교회에서는 중세가 초기 교회와 중세 이후 회복기 사이에 오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동방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비잔틴의 기독교 제국으로 연결되었고, 그 중심지는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이었다. 동방 교회는 칼케돈 종교회의 이후 수 세기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품격에 대한 논쟁에 휘말렸다. 이집트와 동방 교회의 다른 지역에서 칼케돈 종교회의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제 5차 회의가 열린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제 5차 회의)
칼케돈 종교회의는 동방 교회에 심각한 분열을 가져왔다.
소수 안디옥파 : 칼케돈회의 지지 (양성론)
다수 알렉산드리아파 : 칼케돈회의 반대. 키릴루스의 용어[말씀의 성육신한 본성]를 지지
(단성론)
신알렉산드리아파 : 키릴루스의 말을 열렬히 지지하면서, 동시에 칼케돈 회의도 인정.
∴ 칼케돈 회의를 지지하지만, 키릴루스의 방법으로 해석하였다.

단성론 자들은 이집트와 다른 동방 교회를 지배하였고, 너무 강력하기에 억압할 수 없었다. 그들이 반대하는 두가 이유는 ① 알렉산드리아 파는 키릴루스의 교훈 중 어떤 부분이 칼케돈 회의의 결과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② 그들이 생각하기를, 칼케돈회의 지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둘, 즉 양성이란 말로, 그리고 교황 레오가 사용한 여러 가지 용어(교황은 전 세계에 걸쳐 있는 교회를 다스릴 책임을 갖는다)로 표현하는 칼케돈의 문구를 반대한다.
동 로마 황제들은 이 논쟁을 해결하려고 많이 노력하였다.
553년 유스티니안 황제는 제 5차 세계 종교회의를 콘스탄티노플에서 소집하였다. 이 종교회의에서 칼케돈 회의에 대한 키릴루스적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단성론 자들을 진정시키려고 시도하였다. 이 회의의 성과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한다.
참고문헌
1. TONY LANE 지음 기독교 사상사
2. 신학교재 편찬위원회 편 간추린 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