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1. 武士道와 武士道의 淵源
2. 武士 계층의 발생
3. 瘡 . 江戶 . 明治時代의 武士道의 特徵
Ⅲ. 결론
士道의 측면에서 武士道 敎義의 鼻祖가 되는 사람이 山鹿素行이다. 素行은 평화의 시대에서의 武士들의 존재 이유나 가치,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많은 武士들을 감화시켰다. 그리고 주군에 대한 忠誠을 핵심으로 하는 武士道는 山本常朝의 "葉隱"는 "죽음에 대한 각오가 서 있지 않으면 무사도를 추구할 수 없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주군에 대한 순수한 감정과 항상 죽음을 앞에 두고 생활하는 자세는 죽음이 진정한 무사의 삶의 전제 조건임을 가르친 것 같다.
江戶幕府가 무너지고 봉건적인 신분체제가 붕괴되면서 武士라는 사회계급이 없어지고 四民平等의 明治時代를 맞이하게 되었다. 社會階級으로서의 武士는 없어졌지만 武士道 정신은 국민 모두에게 일반화되면서 武士만의 도덕이 아니라 일본인 전체의 도덕이 되었다. 이 國民武士道는 과거 武家式士道와 다른 조정, 천황을 절대적으로 받들어 모시려는 勤皇式士道이다.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국민에게 武士道 정신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은 1873년 徵兵制에 의한 國民皆兵制 실시와 1872년의 軍人勅諭, 그리고 敎育勅語였다. 軍人勅諭는 충절, 예의, 무용, 신의, 질소의 덕목을 강조하여 모든 남자는 대일본제국 군인으로서 호국의 사명을 다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鎌倉時代 이래 약 700년 간 무사들이 실천하고, 또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얻어진 武士道의 내용을 집대성하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주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天皇에 대한 충절은 당연한 것이고 武士道의 중심적인 내용인 武勇이나 禮義, 質素의 정신 등은 瘡時代 이래 형성된 일본 정신으로서 명치시대 이후의 국민정신의 근간이 된 것이다.
요컨대 武士道의 내용의 핵심은 충효임을 알 수 있다. 무사도가 문무양도 즉 봉건시대에서는 武技와 하나가 된 것이었으나 明治時代 이후 모든 사회분야에서 그 충효의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武士道는 승화되었다. 오늘날 일본인의 상식 중에는 간접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사도의 영향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무사도는 일본인에게 善과 惡, 正과 不正 등 제반 도덕적 관념을 가르쳐 왔던 것으로서, 일본의 봉건 제도와 무사도를 모르면 현대 일본인의 도덕관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빈약한 천연 자원과 협소한 국토를 가지고 오늘날 일본이 세계를 움직이는 국가의 하나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무사도 정신임에 틀림없다. 또한 비인간화와 윤리 도덕이 붕괴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를 회복하는 데에 武士道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의 가능성은 적지 않다고 본다. '죽음의 각오'에 대한 무사의 결연함, 미련없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자세 등은 다른 인간 관계의 장에서도 모양을 달리하면서 바람직한 生의 자세로서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가장 진보된 사상을 가진 현대의 일본인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사무라이'가 존재하고 있다. 일본인의 명예와 용기, 그리고 모든 무덕의 유산은 선조의 것임과 동시에 현대 일본인의 것이며 아울러 일본인 후손의 것으로 영원한 정신적 유산인 것이다. 현대 일본인의 민족성과 도덕 그리고 철학 속에 무사도는 융해되어 존재하며, 일본인이 일본인인 이상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 鎌倉時代 武士道의 모습과 정신, 思想적인 배경
2. 江戶時代의 정책과 武士道와의 관계
3. 江戶時代 각종 武士道 敎義의 내용과 그 변천
4. 武士계급이 사라진 明治時代 이후에 武士道가 어떻게 명맥을 유지하였는가
5. 武士道 정신이 현재 일본인의 정신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 바람직한 방향은 어떤것인가
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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