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14. 아르헨티나인으로 출생.
2) 그의 환상주의.
3) 뻬론의 등장.
4) 정치 활동 및 생애후기.
5) 주요작품.
2.환상문학
1) 환상문학의 갈래
2) 보르헤스와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 비교
3.작품분석
1) 1914년, 아르헨티나인으로 출생.
훌리오 꼬르따사르는 1914년 벨기에 수도 브루셀에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군 브루셀에 진군하던 8월 26일 이었다. 부모는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때마침 아버지가 상사 주재원으로 이 도시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천성적으로 싸움보다는 평화를 갈망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1918년 꼬르따사르 가족은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다. 2년후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영영 집을 나가 버렸다. 꼬르따사르는 인터뷰에서도 사생활을 공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만년이 되어서도 이 무책임한 아버지의 가출사건은 잊을 수가 없었던지 이 애기를 할때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섞여 있다. 일부 연구가들은 꼬르따사르 작품에 아버지 역할을 하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은 바로 가족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라고도 한다. 박병규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생애와 작품』 www.latin21.org 발췌
2) 그의 환상주의
그는 어린시절 놀기보다는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특히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베르네를 가장 흠모했는데 이는 꼬르따사르의 작품 『하루에 돌아온 80나라』라는 작품의 제목에서도 확인할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꼬르따사르가 이들 환상적인 작품을 통해서 세상이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처럼 균질하고 단일한 세계가 아니라 다양하고 이질적인 세계, ‘스폰지처럼 구멍난 세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1930년 후반부터는 고등학교 교사, 대학의 교수로 활동을 하였다.
1940년대 아르헨티나의 문단에서는 초현실주의와 실존주의가 강세였다. 꼬르따사르 또한 이 두 문예사조에 깊은 관심을 보여 몇편의 글을 써서 잡지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엄밀하게 말해서 실존주의자도 초현실주의자도 아니였다. 오히려 이 두 사조를 촉매제로 삼아 자신이 창작하고 있었던 환상문학의 탈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세계를 정당화 하려고 노력했다.
『꼬르따사르의 환상성:상징성을 거부하는 언어』고영일. 문학동네.1997
『라틴아메리카 문학사 Ⅱ』정경원.
『중남미 문학사』김현창. 민음사.1994
www.latin21.org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생애와 작품』박병규
『맞물린 공원, 그 가능성의 영역』현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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