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천주가사의 전개 양상
1. 발생·정착기의 양상
2. 근대 전환기의 양상
1) 근대 전환기의 전반적 양상
2) 신문, 잡지에 발표된 천주가사의 양상
Ⅲ. 나오며
천주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도 벌써 200년이 넘었다. 그 동안 수 차례에 걸친 모진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천주교는 대중적인 종교로서 민중들 사이에 굳건히 뿌리를 내렸고, 오늘날에는 그러한 종교적 위상에 맞는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것은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이 땅의 기층민 속으로 스며들어가 생활화, 토착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토착화의 단적인 증거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천주가사이다.
천주교가 유입된 이래 천주교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천주가사는 자신의 신앙 고백이나 가르침, 포교, 혹은 천주교에 반대하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3·4조 내지 4·4조의 가사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천주교 내에서는 흔히 천주교가사, 천주교성가, 천주찬가, 천당노래 등으로 불리는데 이 개념 속에는 종래 창가라고 지칭되던 4·4조 또는 7·5조의 개화기 단형가사까지를 포괄되어 있다. 또한 천주가사는 조선 후기 가사 문학의 전개 양상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넓은 의미로는 종교가사에 속하며 불교가사, 동학가사 등과는 대비적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천주가사는 조선 후기의 문화적·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발생하였다. 조선 후기, 유교적 세계관이 한계에 이르자 지식인들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으로 인해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한 모색의 한 일환으로써 천주교는 남인 계통의 학자들에게 학문으로 수용되었고 이윽고 신앙의 수준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천주가사는 천주교 전파의 중요한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가사가 종교적 전파의 수단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조선 후기의 가사가 사대부에게서만 창작되고 향유되던 종전의 가사와는 달리 일반 민중으로 확대되어 불려지는 생활 속의 노래였고, 서정갈래이지만 교술적인 특성을 가져 긴 내용이라도 가창하거나 음영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가사는 천주교 포교를 위한 가장 적절하고 대중적인 양식으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본론에서는 이런 천주가사의 전개 과정과 특성을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김인섭, 『한국문학과 천주교』, 보고사, 2002
하성래, 「천주가사의 사적연구」, 고려대학교 박사논문, 1985
이경민, 「천주가사연구」, 전남대학교 석사논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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