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종교와역사]서학연구와 천주교의수용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조선 후기에는 농업생산의 증대와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 힘입어 급격한 농민층 분해와 신분제의 동요가 일어났다. 그리고 반주자학적 입장의 실학사상이 대두하였다. 이러한 봉건제 해체기의 양상들은 지주전호관계의 모순을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농민들의 항조투쟁(抗租鬪爭)을 고양시켰다. 더 나아가 이러한 바탕 위에서 농민들의 부세투쟁(賦稅鬪爭)이 격렬해졌다. 이른바 ‘민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또한 그만큼 봉건지배층의 위기의식이 가중되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경우,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모든 사람이 난(亂)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위기의 시대라고 단정할 정도였다.
그러한 점에서 이 시기 천주교의 수용과 서학연구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결과라는 외부적 요인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을 희구하던 조선사회의 내재적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한편 이시기 서구자본주의 열강이 조선에 형태를 달리하면서 봉건지배층 및 민에게 새로운 위기의식의 대상으로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15세기 말 지리상의 발견 이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비롯한 중상주의국가는 그들의 원료공급지를 구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