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승만정권의 독재
2) 4.19혁명이란?
2.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의 등장
3.전두환 군부독재와 광주항쟁
전두환
광주민주화운동
이승만은 미국에서 귀국 이후 다른 어떤 민족지도자보다도 가장 두터운 국민의 지지와 신망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수완으로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였습니다.이러한 국민적 신망은 그에게 '나밖에 없다'는 오만과 카리스마적 권위의식을 가지게 하였고, 또한 이것은 그의 끝없는 정권욕과 독재성을 조장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신집권과 독재권 강화를 위해 온갖 정치파동과 정치적 비리도 감행함으로써 점차 국민의 지지를 상실해갔습니다. 그는 6 ·25전쟁 발발 직후 국군이 공산군을 무찌르며 북진하고 있다고 방송하면서 자신과 정부는 열차로 피신함 으로써 국민을 배신하였고 또한 '국민방위군사건'으로 많은 청년들을 희생시켰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집권을 위해 일대 정치파동을 일으켜 국민의 원성을 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종신집권을 노린 대통령 이승만의 지나친 정권욕과 독재성 및 그를 추종하는 자유당의 부패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평불만이 누적된것이 이승만 정권의 종말을 고하게 합니다
1)이승만정권의 독재
1) 이승만정권기의 정치
*이승만정권은 성립과정에서 좌익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독립당과 같은 민족해방운동 우익세력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다만 국내 지주세력을 중심으로 한 한국민주당과 친일세력 등을 기반으로 삼았을 뿐. 그러나 곧 한민당의 지지도 잃고 그 세력기반은 더욱 약화됨.
6.25 전쟁중에 거창양민 학살사건 등과, 1백만명의 제2국민병을 굶주림과 질병으로 몰아넣고 그 간부들이 23억원과 5만섬 이상의 양곡을 착복한 국민방위군 사건(51.3) 등의 실정을 거듭한 이승만은 1952년 1차 임기가 끝났을 때는 지지기반이 약한 국회에서 간접선거로는 다시 당선되지 못할 것이 확실. 이에 이승만은 이른바 부산정치파동을 야기함(52.5)
* 부산정치파동 - 부산을 중심으로 한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백골단, 땃벌레 등 폭력조직을 동원하여 국회 해산을 요구하게 하고 야당국회의원 50여 명을 국제 공산당의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씌워 헌병대로 연행함. 이런 폭행 끝에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개헌안을 경찰의 삼엄한 포위 속에서 기립표결로 통과시킴.(52.7). 이 개헌으로 그는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정권을 유지함.
*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한 두 번째 사건은 '사사오입'개헌. - 발췌개헌 만으로는 종신 집권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은 3선 금지조항을 폐지하기 위한 또 한 번의 헌법 개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제3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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