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축구의 근대화 과정
Ⅲ 축구에서 드러난 민족주의의 모습
Ⅳ 축구는 민족주의를 어떻게 자극하는가?
Ⅴ결론
자국 국가 대표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자국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모여든다. 경기장에 모인 서포터즈(supporters)들은 90분 내내 아니, 경기 시작 전부터 경기 종료 후까지 노래를 부르며, 구호를 외치며 자국 대표팀을 응원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국 대표팀과 하나가 되어 가고 상대 국가팀에 대한 적의를 키워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하나의 공동체임을 인식한다. 이렇게 축구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는 현대에서 어느 것보다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데 최고의 수단이 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축구랑 민족주의는 과연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Ⅱ 축구의 근대화 과정
축구와 민족주의의 연관을 살피기에 앞서 우선 축구가 어떠한 근대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축구가 거친 근대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현대 축구의 특성과 민족주의와의 관계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비슷한 볼 게임이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이러한 공놀이를 근대 축구로 만든 곳은 영국이며 가장 오래된 문헌이 있을 정도로 영국에서의 풋볼은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김문겸, 풋볼의 사회사를 통해 본 근대 스포츠의 사회학적 의미, 사회조사연구, 제 13권, 제 1호, 1998년, p117 , 가장 오래된 문헌은 1314년에 포고된 풋볼 금지령이다.
영국의 근대 이전의 축구는 지금과는 달랐다. 구장의 규격도 정해져있지 않고 들판에서나 도시 광장에서 심지어 도시 거리에서도 경기는 이루어졌고 관중과 관객의 구분도 모호했다. 사람 또한 특정한 수로 제한을 둔 것이 아니어서 적게는 수십명 많을 때는 수백명이 모여서 공을 차기도 하였다. 경기 규칙 또한 없었고 지금과 달리 폭력이 용인되었다. 이처럼 근대 이전의 축구는 자주 소란과 소동을 유발시켰기 때문에 축구를 금지하는 포고령이 내려지곤 했었다.
이러한 축구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사라지게 된다. 즉,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전근대적인 축구는 사라지게 된 것이다. 농촌에서는 전통적 농촌의 해체 그리고 농촌 해체에 따른 농촌 문화의 위축에 의해, 도시에서는 산업화에 따른 축구 공간의 제한과 중간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에 의한 기존 민중문화의 탄
사이먼 쿠퍼, 축구 전쟁의 역사, 이지북, 2002년
이영석,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 푸른 역사, 2002년
김문겸, 풋볼의 사회사를 통해 본 근대 스포츠의 사회학적 의미, 사회조사연구, 제13권 제1호,1998년
박영관, 영국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매체로서의 문학작품과 스포츠, 한국사회체육학회지, 제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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