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 이도의 호학(好學)하는 성품
▲ 학문을 좋아하는 세종에 대한 실록의 평가
▲ 과도한 세종의 독서 - 눈병 걸리고도 책읽기 계속...
▲ 넓고 깊은 세종의 지식 - 수학, 중국어...
▲ 세종 사후 실록의 세종 평가
Ⅲ. 결론
세종의 학문에 대한 열정 (학구열)
Ⅰ. 서론
최근 몇 년 동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싸이월드”라는 미니홈피가 인기를 끌었었다. 대다수의 젊은이를 비롯해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미니홈피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현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역사적인 위인들도 이 미니홈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심코 인터넷 검색창에 세종대왕을 쳤는데 신기하게도 ‘세종대왕 미니홈피’가 나왔던 것이다. 물론 세종대왕 외에도 다른 위인들 역시 미니홈피를 누군가 만들었겠지만, 세종대왕이라는 제목으로 미니홈피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세종대왕이 여전히 대중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알려진 것처럼 세종대왕은 조선 오백년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군주이며, 성군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대표적인 업적인 한글창제를 비롯해 과학의 진흥, 외교와 국방, 음악의 정리 등 수많은 업적들로 인해 오늘날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업적을 이룩한 대왕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세종의 모습이 더 궁금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세종대왕하면 방대한 지식과 끊임없는 독서와 배움에 대한 의지가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보고서에서는 학문을 좋아하는 인간 세종에 대해서 조사해 보겠다.
Ⅱ. 본론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이 문구는 세종대왕의 무덤에 새겨진 묘호이다. 뜻을 풀이해 보면 ‘학문에 영특하고 병법엔 슬기로우며 인자하고 뛰어나며 명철하고 효성스러운’ 이라는 의미다. 여기에서도 학문에 영특하다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과연 세종대왕은 학문을 좋아했으며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그럼 지금부터 학문을 좋아하는 세종대왕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 이도의 호학(好學)하는 성품
이도는 세종의 원래 이름이다. 16세인 1412년 5월 그는 충녕대군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에 비해 열악한 교육 여건에서도 충녕의 학문이 날로 늘고 있음은 『실록』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다. 충녕의 나이 17세 되던 태종 13년 태종을 위해 열린 잔치의 한 일화를 보겠다.
이 해 겨울에 세자(世子)와 여러 대군(大君)과 공주(公主)가 헌수(獻壽)하고 노래와 시(詩)를 아뢰었다. 충녕 대군(忠寧大君)이 임금에게 시의 뜻을 물었는데, 심히 자세하니 임금이 가상하게 여겨 세자에게 말하였다.
“장차 너를 도와서 큰 일을 결단할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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