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사 토론문- 고려시대 문학에 대한 이해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
- 고려시대 문학에 대한 이해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 -
5주차 발표·토의 수업에서는 정읍사, 한림별곡, 청산별곡, 쌍화점에 대한 문학사적 의미와 논의에 대하여 다루었다. 이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친숙한 작품들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 때 배웠던 작품들이다. 청산별곡의 경우 첫 연의 구절은 눈을 감고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또한 쌍화점을 제외하고는 모의고사와 수능에도 자주 출제되는 단골 작품들이다. 그런데 학창시절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들에도 많은 의미와 논의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에 우선 놀랐다. 그리고 왜 쌍화점은 수업 시간을 통해 잘 다루어지지 못하며 수능에도 출제되지 못하는 누명을 쓴 이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정읍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토의를 통해서 정읍사의 해석 중 ‘全져재’ 논쟁을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全져재’로 붙여 읽어야 할지 ‘후강전 져재’로 띄어서 읽어야 할지에 대하여 학자마다 그 의견이 달랐으며 띄어쓰기에 따라 해석도 달라졌다.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한자와 한글을 붙이는 것이 어색하여 ‘후강전 져재’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우리 국어과만의 작은 결론을 내보기도 하였다. 이처럼 띄어쓰기에 따라 고문헌들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난 시간 교수님께서 들려주셨던 옛날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띄어쓰기 해석에 따라 사위에게 전 재산을 줄 수도, 한 푼도 안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독립신문 창간 때부터 띄어쓰기를 한다는 사실을 얼핏 고등학교 때 배웠던 기억도 떠올랐다.
정읍사의 창제 시기와 창제자에 대한 논란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정읍사가 가·무·악이 혼합된 종합 예술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예술에 있어서는 항상 가·무·악이 함께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고 느껴졌다. 물론 서양의 경우에도 오페라와 다양한 연극이 존재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푸치니의 작품만을 우수한 문화로 평가하고 있다. 오페라를 보러 가는 것은 상류 사회의 문화 향유이고 판소리, 궁중 가무는 전통시장에서 추석 때나 공연하는 것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가·무·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비초등교사인 나도 우리 전통의 예술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발령이 난 후 아이들과 함께 이러한 공연을 보러 가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
두 번째로 경기체가 양식의 발달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경기체가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전통적인 시가 양식의 계승인지에 대하여 간단히 토의를 하였다. 한시의 오언칠구 양식이 정확하게 경기체가에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부 그 모습과 형태를 살펴볼 수 있었다. 동시에 주제와 감정을 살펴보면 우리 고유의 정서가 깊숙하게 들어가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한림별곡의 경우에도 사대부의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면서 무신정권기 조금은 문란한 사회상이 담겨져 있는 연들도 존재하였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분명 중국의 시 양식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것을 다시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으로 승화 및 발전시켰다는 조금은 교과서적인 결론을 내려 보았다.
이번 수업을 통해서 내가 배웠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장들이 한람별곡 중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한림별곡에는 우수한 문인들 또는 아름다운 풍경 노래하며 자신의 감정을 밝히고 다짐하는 글뿐만 아니라 조금은 야한 내용의 장들이 존재한다. 권력을 갖은 무신들 앞에서 문신들이 그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야하게 노니는 장면을 담은 구절이 있다는 사실은 신기하면서도 약간은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러한 작품들을 가르쳐야할까? 그것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분명 한림별곡의 다른 장들도 우리의 문학 작품들이다. 그것이 야한 내용이라고 해서 부끄러워하거나 왜곡 또는 감추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다시 고등 국어 교육과 연결시킨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토론을 통해서 우리는 교육적으로 보수적인 시각을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아이들에게 왜곡된 성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선정하여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고등학생도 이미 속된 말로 ‘이미 알 것은 다 아는 나이’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한 더 많은 교육적 논의와 고민이 필요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세 번째로 고등학교 때 자주 배우고 첫 연은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들어본 청산별곡의 논쟁을 살펴보았다. 그 중 우리는 청산별곡의 주제를 가지고 토의를 이루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친구들이 청산별곡의 주제로 ‘낙향한 지식인 또는 선비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와 ‘가던 새를 갈던 쟁기로 해석할 경우 전쟁으로 인하여 고향 땅을 잃은 실향민의 애달픈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번 수업을 통해서 양주동 선생과 조윤제 선생은 짝사랑에 관한 노래라 주장한 사실을 처음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다시 배경지식이 없다는 가정 하에 청산별곡을 함께 읽어보니 사랑에 상처 입고 슬픈 마음을 노래하는 시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사랑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화자가 슬픔을 가슴 속에 품고 새를 보고, 바다를 보고 해금을 켜는 사슴을 보며 그 마음을 노래한 시로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이것이 단순히 애달픈, 애상적 노래는 아니라고 하셨다. 바로 극복의지가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청산별곡에서는 7연과 8연에서 극복의지와 승화정신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청산별곡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우리의 문학작품에서는 단순히 사랑에 아파하고 슬퍼하는 내용만의 시는 없다고 한다. 반드시 그것을 극복하고 때로는 해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부분이 존재한다. 우리 민족의 이러한 극복의지와 승화정신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끊임없는 외침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요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촌봉사를 가서 단 며칠 그 더운 여름날 농사일을 도운 기억이 났다. 그 당시에도 그 짧은 시간이 정말 힘들게 느껴졌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그 힘든 농사일을 신명나게 노동요라는 노래를 통해서 승화시켰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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