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
18세기말과 19세기의 영국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벤담과 밀에서 비롯된 윤리학으로 정치학설에서 공중적 쾌락주의와 같은 뜻이다. 목적론적 윤리의 한 형태이지만, 이기적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또 내면적 윤리에 대해서 사회적, 외면적 도덕의 경향을 나타낸다.
공리주의 근본원리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행위는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을 가질 때 옳은 행위이고 반대의 경우는 그른 행위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이란 행위자의 행복이 아니라 행위의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행복이다. 공리주의는 각자가 자기 이해(利害)를 추구해야 한다는 견해인 이기주의에 반대하며, 어떤 행위를 그 결과와 무관하게 옳거나 그르다고 여기는 윤리 이론과도 대립한다. 또 행위위자의 동기를 바탕으로 행위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윤리이론과도 다르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나쁜 동기에서 한 행위도 옳은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Ⅱ. 공리주의의 본질
공리주의는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가?라는 실천적 물음에 대답하려 하며 그 답은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산출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담은 해야 한다, 옳다, 그르다와 같은 술어는 공리주의적으로 해석할 때에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벤담이나 밀은 모두 쾌락과 고통이 인간행위에 동기를 부여한다고 믿었다. 예컨대 밀은 그와 같은 동기부여를 행복이 인간행위의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에 행복의 증진은 모든 인간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이라는 주장의 기초로 보았다.
19세기말 공리주의를 주도한 사람은 케임브리지대학의 헨리 시지윅이다. 시지윅은 벤담이나 밀의 윤리적 술어에 관한 의미론 및 동기부여론을 배격하고 공리주의가 ‘상식의 도덕에 대한 체계적 반성에서 나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공리주의를 지지했다. 그는 상식적 도덕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공리주의 관점에서 정립할 수 있다고 보고, 공리주의가 상식적 윤리설의 모호함과 모순에서 비롯되는 여러 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리주의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리주의가 우리의 도덕적 직관과 어긋나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유용성의 관점은 약속을 어기는 행위를 장려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공리주의 윤리설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의문에 답해야 했는데, 그것은 공리주의가 그러한 함축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직관 개념을 논박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몇몇 공리주의자는 이 반론을 해결하기 위해 공리주의 이론을 수정했다.
수정된 공리주의가 규칙 공리주의이다. 이에 따르면 특정 경우에 특정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가 유용한 규칙을 따른 것인지 아니면, 어긴 것인지로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규칙이 유용한지 아닌지는 일반적 실천의 결과로 평가한다. 밀은 때로 규칙 공리주의자로 해석되기도 했고, 벤담과 시지윅은 행위 공리주의자였다.
벤담의 쾌락주의적 가치이론에 반대하여 인생의 가치는 고통에 대한 쾌락의 우세 이상의 어떤 것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밀은 벤담과 달리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한다. 그에 따르면 쾌락 중에서 어떤 것은 강도·지속성(벤담이 인정한 양적 차원) 등과는 무관하게 다른 것보다 본래적으로 우선한다. 몇몇 공리주의 철학자는 공리주의의 기본 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비쾌락주의적 가치를 인정했다. 20세기 분석철학의 개척자인 영국 철학자 G. E. 무어는 다양한 의식(사랑, 지식, 미적 체험 등을 포함)을 쾌락과 무관하게 본래 가치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견해를 ‘이상(ideal) 공리주의라고 한다.
공리주의에 대한 또 다른 반박은 고통을 막고 제거하는 일이 이미 행복한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킬 뿐인 어떤 대안적 행위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의 몇몇 공리주의자는 이 점을 고려하여 수정된 공리주의 이론을 내놓았는데, 이를 소극적 공리주의라고 한다.
Ⅲ. 벤담과 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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