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배경은 경주 서라벌인데, 처용이 그곳에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누워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화를 내기는커녕 ‘본래 내 것(아내)이었지만 빼앗겼으니 어찌할 수 없다’ 고 체념하고 만다. 이 처용가가 지어진 배경설화를 보면 처용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삼국유사의 처용가 관련 기록 중 직접적으로 처용가의 내용과 관련되는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 : 지금의 울산)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용의 조화로 구름과 안개 때문에 길을 잃었다. 일관의 말에 따라 그 근처에 용을 위하여 절을 세우도록 명하자, 곧 안개와 구름이 걷히고 용이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나타나 왕의 공을 칭송하여 춤을 추고 연주를 하였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가서 정사를 도왔는데 그가 바로 처용이다. 왕은 처용에게 미녀를 아내로 주고, 그의 마음을 잡아 두려고 급간(級干)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역신(疫神)이 처용의 처의 아름다움을 흠모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밤에 처용의 집에 가서 몰래 같이 잤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두 사람이 있으므로, 이에 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물러나자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그의 노하지 않음에 감복하였으므로 이후로는 처용의 얼굴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물러갔다. 이로 인하여 나라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움을 맞았다 한다.
2. 주제 ①아내의 간음현장을 목격한 후의 체념과 초탈한 심정.
②처용의 정치적 실패에 대한 한탄(개인적 의견)
3. 기존연구에 대한 검토
지금까지의 연구는 처용가 하나만을 떼어서 이루어지는 방향은 없었다. 앞으로도 설화와 관련하여 처용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처용설화에 관해서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는 그것을 주제로 하여 한편의 논문을 써도 될 정도로 비교적 구체적이며, 큰 맥을 형성하면서 이루어져 왔다. 처용설화와 관한 연구를 대별하면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관한 연구는 ①과 그 외의 논문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주요 자료를 첨가하는 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1) 첫째, 국어학적인 연구로서 처용의 어원에 관한 연구이다. 처용에 관한 語義로서는 6가지 견해가 있는데,
① 龍 =處容=稱 인데, 고대 국어에서 龍을 뜻하는 단어로서 ‘처용’ 또는 이와 유사한 일음 절의 단어가 있었던 것으로 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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