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 이론
1) 공리주의의 포괄적 이해
18세기 말부터 1세기 중엽까지 영국을 지배하였던 사회사상. 공리(功利)를 증진시키는 것을 행위의 목적과 선악(善惡)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J.벤담에 의하여 세계화되었고, J.밀과 그의 아들 J.S.밀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급진주의자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사상적 기조로 하여 공리 또는 최대의 행복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는다. 즉 벤담에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고통과 쾌락에 의하여 지배되고 모든 인간행위의 동기는 필연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데 있으며, 그 결과 쾌락과 고통은 모든 인간행위에 대한 선악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라 했다. 벤담은 또 이러한 원리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결국 이기적인 개인의 결합체인 사회의 기본원리를 에서 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법이나 정치제도 또는 도덕이나 종교도 모두 에 기여하는지 여부에 따라서 그 정당성이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특히 그는 국가의 기초는 계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성에 있고, 그 필요성이란 개인을 산술적으로 계산한 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벤담의 주장이 어떠한 질적(質的) 차이도 무시된 다수인(多數人)의 행복이라는 점에 반해, J.S.밀은 쾌락과 고통을 인간행동의 유일한 동기로 본다는 점에서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그러나 쾌락이 모두 양적(量的)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를 가지는 것이며 감각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이 더 중요하다고 함으로써 공리주의를 수정하였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평등한 존재로 보고 모든 인간이 1인으로서 계산되어 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던 벤담의 사상과는 커다란 차이를 이루는 것이었다. 한편, 이에 앞서 J.S.밀의 아버지이며 J.벤담의 제자인 J.밀은 벤담의 공리주의 원리에다 의 원리를 도입하여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개인 속에 이타적(利他的) 행위를 할 수 있는 심리적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공리주의는 영국 산업혁명기의 사상적 표현으로 등장하여, 여러 해 동안 수정·보완되면서 특히 1세기 영국의 선거제도와 의회 제도를 비롯한 정치·법률·경제 등의 여러 제도의 민주적 개혁에 크게 이바지한 뒤, 산업자본주의의 전환과 함께 T.H.그린 등의 이상주의로 바뀌어 갔다.
2)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비교
"행위란 그것이 행복을 증진하는 경향에 비례해서 옳으며, 불행을 산출하는 경향에 비례해서 그른 것이다." 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전의 모든 윤리학이 칸트의 선의지로 귀결되면서 선 자체의 옳음, 당위성, 양심이 강조되었으나, 공리주의의 탄생은 다시 쾌락주의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공리주의는 크게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로 나눌 수 있다. 벤담이 양적 공리주의를 외쳤다면, 밀은 질적 공리주의자로 불리운다.
공리주의의 창시자 격으로 대우를 받는 벤담이 제시하는 기준은 유용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만이 쾌락과 고통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벤담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쾌락의 양을 최대한 늘리고 고통의 양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공동체에 봉사를 한다고 할 때에도,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공동체에 속한 개별 구성원들의 이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 개인들을 넘어선 어떤 공동체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동체 자체는 일종의 허구이고, 오직 개별적인 구성원들만이 실재할 뿐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이익이란 그 구성원의 이익의 총체에 지나지 않는다.
벤담에게 있어 유용성의 원리는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준칙이고 최고선이다. 이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행위가 옳으며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그 행위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최대 행복을 증진시키는 행위는 곧 우리가 수행해야할 옳은 행위이며 우리가 행해야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또, 벤담의 유용성은 측정 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양적이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다. 우리가 행한 행위의 결과들을 검토함에 있어 우리는 그 행위가 산출하는 쾌락과 고통의 양을 판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떤 행위의 선택이 고통을 능가하는 최대한의 쾌락을 산출하는지 또는 가능한 최소량의 고통을 산출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금전이 지속성면에서, 효율성면에서 우리가 쾌락을 얻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라고 하는데, 벤담의 문제점은 여기서 여실히 드러난다. 같은 수치의 돈이라는 것은 거지에게나 백만장자에게나 똑같은 쾌락을 주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돈이라는 것이 우리의 쾌락을 재는 기준이 되려면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벤담의 유용성의 원리가 모든 쾌락과 고통들이 하나의 동일한 기준을 통해서 측정될 수 있는 공통적인 성질을 지닌다는 사실이 전제로 깔려있다면 그 전제에서의 난점으로 유용성의 원리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반면, 존 스튜어트 밀은 도덕성의 기초를 최고선 혹은 최대의 선과 동일시하고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규칙인 도덕성의 원리들은 최고선이라는 목적으로부터 도출된다. 이는 그가 벤담의 양적 쾌락주의와는 달리 쾌락의 질적인 차이들을 강조하는 질적 쾌락주의를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덕을 포함하는 인간의 행복이 목적 자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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