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칸트
‘저 하늘에 빛나는 별, 내 마음 속의 도덕법칙’
칸트의 비문에 적혀 있는 글이다. 칸트는 사람은 마음 속에 세상의 어느 간섭에도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절대적인 도덕의 잣대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인간은 사유능력의 도움에 힘입어 도덕적 행동을 위한 이성 규칙을 마련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도덕 법칙은 절대적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순수한 이성에 의해 근거지워져야 하며, 나의 경험이나 인간은 본성 내지는 우리 세계의 주변 여건 등에 의해 근거지워져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실성을 가지려 노력하는 이유가 그렇게 함으로써 이전에 좋은 경험들을 가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진실성이라고 하는 나의 행동 원리는 언제고 다른 상황이 내게 정반대의 경험을 가져온다면 쉽사리 동요되고 말 것이다. 이 때의 진실성이란 칸트가 말하듯 우리가 언제고 바꾸어버릴 수 있는 하나의 실천 규칙일 뿐이다. 그것은 결코 도덕성의 최상 원리가 아니다. 도덕성의 최상 원리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칸트가 일생을 바쳐 얻고자 했던 것이었다.
도덕성의 최상 원리의 발견 그리고 그 확립은 그 이외의 어떤 것과도 구별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과제이다. 따라서 이는 여타의 모든 도덕적 탐구와 구별된다. 또한 도덕적 최상 원리가 발견될 때까지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최상 원리의 발견이 왜 그렇게 중요한 지에 대해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덕 형이상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도덕을 이끄는 실마리와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위한 최상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한 도덕 자체가 타락에 빠져 그 곳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선의지
이러한 도덕 규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칸트는 ‘선의지’라는 것을 언급하였다. 칸트는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선’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선한 의지’ 뿐이라고 말했다. 이성, 유머 감각, 판단력, 그 밖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정신의 재능들, 또는 용기, 결단력, 끈기 등과 같은 기질적 특성들이 여러 가지 점에서 선하고 바람직하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의지가 선하지 않다면 이 모든 것들은 극도로 악하고 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심신의 안정과 만족 등은 만일 선한 의지가 그것들과 동반되지 않는다면 우리를 우쭐하게 만들고 심지어 많은 경우 우리를 오만에 빠뜨리기도 한다. 선의지는 그런 것들이 심성에 미치는 영향을 바로잡아 보편적-합목적적이 되도록 만듦으로써 행위의 원리 전체를 바로잡는다. 이성적이고 공정한 사람이라면 선하고 순수한 의지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 계속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유쾌한 기분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의지는 행복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일 수 있는 것이다.
이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성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일까? 예를 들자면, 완전 범죄를 위해 범죄자는 예리한 이성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자면, 이성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농담이나 유머는 분명 사교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쁜 의도와 결합하면 다른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심지어 파멸시킬 수도 있다. 용기, 결단력, 끈기 등도 마찬가지이다.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에게 그것은 훌륭한 덕목이다. 하지만 냉혹한 은행강도의 경우라면 그 반대가 된다. 권력, 재산, 명예 역시 분명 그 자체로 선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건강조차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건강을 뽐내는 사람은 자부심에 가득 차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나 신체 장애인을 업신여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무제한적으로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선의지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선의지는 그것이 무엇을 실현하고 성취했기 때문에 선한 것이 아니다. 또한 선의지는 그것이 어떤 설정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쓸모가 있기 때문에 선한 것도 아니다. 선의지는 오직 의욕 자체만으로, 즉 그 자체만으로 선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선의지에만 주목한다면 우리는 선의지가 의지의 모든 결과물들보다 월등하게 우월함을 알 수 있다. 모든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결국 선의지만이 홀로 남겨질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선의지는 그 자체로 보석처럼 빛날 것이며 모든 가치를 자기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빛날 것이다.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이러한 가치를 증가시키지도 감소시키지도 않는다. 이러한 유용성이나 무용성은 말하자면 보석을 사고 팔 때에 보석을 손쉽게 다루기 위해 보석 주위에 놓은 테두리와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테두리를 만든 것은 보석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지 보석 전문가에게 보석을 팔기 위한 것은 아니며 보석의 가격을 정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선의지는 어떤 경우에 선한 것인가?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유용하다는 것은 결코 선의지를 선하게 만드는 근거가 아니다. 그 목적이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도덕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된 선택 내지는 목적이 최상의 목표로 추구되어야 하며 바로 그러한 것이 도덕성이라는 오랜 관념에 칸트는 과감히 단절을 선언했던 것이다. 칸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의지가 비록 불리한 여건 때문에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그것이 단순한 욕망 이상의 것이기만 하면 그 자체만으로 보석처럼 빛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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