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행위란 그것 이행복을 증진하는 경향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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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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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행위란 그것이 행복을 증진하는 경향에 비례해서 옳으며, 불행을 산출하는 경향에 비례해서 그른 것 이다"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전의 모든 윤리학이 칸트의 선의지로 귀결되면서 선 자체의 옳음, 당위성, 양심이 강조되었으나, 공리주의의 탄생은 다시 쾌락주의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공리주의는 크게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로 나눌 수 있다. 벤담이 양적 공리주의를 외쳤다면, 밀은 질적 공리주의자로 불리 운다.
Ⅰ. 대표적 인물
벤담
공리주의의 창시자 격으로 대우를 받는 벤담이 제시하는 기준은 유용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만이 쾌락과 고통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벤담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쾌락의 양을 최대한 늘리고 고통의 양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공동체에 봉사를 한다고 할 때에도,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공동체에 속한 개별 구성원들의 이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 개인들을 넘어선 어떤 공동체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동체 자체는 일종의 허구이고, 오직 개별적인 구성원들만이 실재할 뿐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이익이란 그 구성원의 이익의 총체에 지나지 않는다.
벤담에게 있어 유용성의 원리는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준칙이고 최고선이다. 이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행위가 옳으며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그 행위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최대 행복을 증진시키는 행위는 곧 우리가 수행해야할 옳은 행위이며 우리가 행해야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또, 벤담의 유용성은 측정 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양적이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다. 우리가 행한 행위의 결과들을 검토함에 있어 우리는 그 행위가 산출하는 쾌락과 고통의 양을 판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떤 행위의 선택이 고통을 능가하는 최대한의 쾌락을 산출하는지 또는 가능한 최소량의 고통을 산출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금전이 지속성면에서, 효율성면에서 우리가 쾌락을 얻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라고 하는데, 벤담의 문제점은 여기서 여실히 드러난다. 같은 수치의 돈이라는 것은 거지에게나 백만장자에게나 똑같은 쾌락을 주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돈이라는 것이 우리의 쾌락을 재는 기준이 되려면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벤담의 유용성의 원리가 모든 쾌락과 고통들이 하나의 동일한 기준을 통해서 측정될 수 있는 공통적인 성질을 지닌다는 사실이 전제로 깔려있다면 그 전제에서의 난점으로 유용성의 원리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도덕성의 기초를 최고선 혹은 최대의 선과 동일시하고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규칙인 도덕성의 원리들은 최고선이라는 목적으로부터 도출된다. 벤담의 주장이 어떠한 질적(質的) 차이도 무시된 다수인(多數人)의 행복이라는 점에 반해, J.S. 밀은 쾌락과 고통을 인간행동의 유일한 동기로 본다는 점에서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그러나 쾌락이 모두 양적(量的)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를 가지는 것이며 감각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이 더 중요하다고 함으로써 공리주의를 수정하였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평등한 존재로 보고 모든 인간이 1인으로서 계산되어 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던 벤담의 사상과는 커다란 차이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벤담의 양적 쾌락주의와는 달리 쾌락의 질적인 차이들을 강조하는 질적 쾌락주의를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덕을 포함하는 인간의 행복이 목적 자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행복이란 쾌락을, 그리고 고통의 부재를 의미하며 불행이란 고통을, 그리고 쾌락의 결여를 의미한다."에서 볼 수 있듯 밀 역시 쾌락을 추구했지만, 밀에게서 쾌락은 벤담과는 조금 다르다. 어떤 성질의 쾌락이 다른 성질의 쾌락에 비해 더 많거나 더 적은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질 사이에는 우월함과 열등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질과 양과 결합된 쾌락은 다른 어떤 질과 양과 결합된 쾌락에 비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 예를 들어, 다량의 식탁 포도주가 소량의 최상급 포도주보다 열등하듯이 말이다.
역시 행복과 관련해서도 쾌락의 양의 정도가 곧 인간의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에 찬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에 찬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삶에 포함된 쾌락의 질은 바보의 쾌락의 질보다 우월하고, 돼지의 쾌락의 질보다는 더욱 우월하므로 소크라테스의 삶에 상당한 불만족이 뒤따른다 해도 그의 삶은 여전히 쾌락의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것이다. 밀이 볼 때 인간의 행복을 정의하는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상위의 능력들을 발휘하는 것과 이로부터 얻는 기쁨이다. 또한 행복의 구성요소에 포함되는 것은 자유와 능력의 감정, 안도감, 인격 등의 요소들 사이의 조화라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 참고 문헌
이을상 김수청 (2002). 공리주의, 이문출판사
허남결 (2000). 밀의 공리주의-덕과 공리성의 만남, 서광사
교육인적자원부 (2002). 초등학교 교사용 지도서 도덕5, 대한교과서 주식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