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언씨가 지은 칼빈의 개혁사상 연구(성광문화사, 1992년)라는 책에 나와았는 칼빈주의가 경제개혁에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을 저자의 의도를 살리며 분석을 통해 칼빈주의가 자본주의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글을 서술해보고자 한다. 논문은 종교개혁 당시(16세기) 칼빈이 살며 관여하였던 제네바의 경제체제속에서 그가 주장하였던 것과 노동, 직업 등에 대한 개념을 서술하였으며 칼빈주의가 자본주의 발달에 미친 영향과 관련한 학자들 사이의 견해를 제시하였다.
1.칼빈
John Calvin은 1509년 7월 19일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60마일 떨어진 노용(Noyon)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 제랄드 칼빈
) 부모가 경영하는 통(桶)을 만드는 공장에 다녔으나 의회의 비서와 교구의 서기직을 맡기도 했고 뒤에는 목사의 고문이 되었는데 귀족 계급에 속하였다.
(Gerard Calvin)과 모친 즈앤·르프랭(Jeanne Le Frane)의 4남 2년중의 차남이었는데 예리한 지성을 가진 뛰어난 인물로 인정받았다. 14세때 파리에 와서 라 마르세대학에 등록하였으나 곧 몽테큐대학으로 옮겼다. 몽테큐대학은 라마르세대학과 더불어 파리대학(University of Pris)의 일부였으며 금욕주의를 신조로 삼는 엄격한 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칼빈은 이곳에서 철저한 종교적인 훈련과 준법정신을 체득하였다. 칼빈은 대학생활 중 종교개혁의 새로운 사상에 접하였다. 쟈크 르 페브르(Jacque Le Fevre)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는 개혁가로서 칭의(Justification)의 교리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처음으로 Protestant 적인 주석을 썼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철저하게 주장하였다. 칼빈은 부친의 권유와 사제직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해 법학을 공부하게 된다. 1535년 프로테스탄트가 되어 파리로 온 그는 종교개혁운동에 전념하게 돈다. 1536년에는 바젤에서 기독교강요
) 초판은 모두 6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은 율법(10계명) 해설, 2장은 사도신경, 3장은 주기도문, 4장은 성례식과 성찬식, 5장은 다른 성례문제들, 6장은 기독교인들의 자유를 다루었다.
를 출판한 후 파리로 돌아가려 했으나 정치적인 어려움 때문에 제네바에 그대로 머물게 되었다. 제네바는 인구 13,000명 가량의 도시로 일찍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카톨릭을 거부하였는데 카톨리주의가 추방된 후 공백기간에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의 사역에 의해 제네바 시민들의 혁명사상이 개발되어졌다. 칼빈은 제네바에 머물면서 엄격한 종교적 규율의 제의하는 등 급진적인 개혁사상으로 추방된다.
1551년 칼빈은 제네바를 떠난 지 3년 4개월만에 개혁가로 다시 제네바에 입상하여 허물어진 질서를 세우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시위원회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교회법규를 작성하여 시의 정책방향으로 삼았다. 그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제네바시를 종교개혁의 실험장소로 활용하였다. 칼빈은 이곳에서 강의도 하는 등 학문의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여 59권의 저작을 남겼는데 1564년 5월 27일 5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칼빈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인 것이었다. 반대파에 의해서는 무식한자
) 칼빈의 사후 13년만에 나온 조직적인 칼빈의 공격자 제롬 볼섹은 카톨릭에서 복음주의로, 복음주의에서 다시 카톨릭으로 귀화한 자로서 작은 팜플렛인 "개혁자의 전기"에서 칼빈을 야심가, 자부심이 강한 자, 오만한 자, 잔인한 자, 복수를 하고야 마는 자, 사기꾼, 무식한 자 등으로 묘사하면서 극열하게 비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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