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관련된 한 일화를 읽고)
1. ‘양심’이라는 덕목을 선정한 이유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양심이라는 말을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의식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사람들을 보면서 ‘양심을 쓰레기와 함께 버린 사람들’이라 하여 비꼬는 등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마인드를 양심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곤 한다. 양심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양심은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행위·의도·성격의 도덕적 의미를 올바르고 착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관련지어 파악하는 도덕의식’이다. 이것은 대개 문화나 교육에 의해 주입되며, 일반적으로 어떤 행동의 도덕적 특성에 관해 직관적으로 권위 있는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행위의 내면에 내포되어 있는 도덕의식을 양심이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양심이라는 것을 공교육에서 가르치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판단능력을 말한다. 그것이 보통은 아무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있을 때 그것을 비판하는 재료로서 사용되는 측면이 있기에 사회에서 통용되는 양심은 배려를 포함하는 것이면서도 행위를 함으로써 느끼는 죄책감을 표현하기도 하여 도덕의식이라 할 수 있고, 죄책감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결과적으로 행하게 되는 행동을 비판하는 측면에서 보면 도덕적 ‘의지’를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양심이라는 한 단어는 많은 뜻을 포함하면서도 결국엔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도덕적이라고 판단되는 행위를 만들어 내는 선의지라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양심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란 이름으로 잃어버리게 된 양심을 되찾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예비교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심어주어 깨끗한 사회를 만들고자 함이다.
2. 동화 속 이야기 (훔친 시험지)
훔친 시험지
훔친 시험지를 보고 있자니, 선생님의 얼굴과 수업 시간에 저질렀던 갖가지 짓궂은 장난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짓거리들은 물론 나쁜 짓이었다. 그러나 시험지를 훔친 것은, 그런 장난과는 전혀 다른, 양심을 속이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 선생님은 보스톤 라틴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우리들을 환영한다고 강당으로 모이라고 했다. 그 때 난 챨스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계속해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나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무릎 위에 책을 펼쳤다. 가슴을 수근거리며 몰래 책을 읽던 나는 갑자기 둘레가 조용해진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교장 선생님이 난생 처음 보는 엄숙한 낯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계셨다. 이 일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1주일도 채 안 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곧 교무실로 불려가 엄한 꾸중을 듣고 용서를 빈 뒤에야 겨우 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짓궂은 행동은 고쳐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의 장난이 얼마나 심했던지, 가장 너그럽고 친절한 독일어 선생님조차도 나를 퇴학시키려고 하셨다. 다행히도 아버지가 학교에 오셔서 잘 이야기해 주신 덕분에, 석 달 동안 다른 학생보다 한 시간 일찍 등교하라는 벌만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셨기 때문에, 혹시 지나친 장난으로 퇴학이라도 당할까 몹시 걱정하셨다. 나는 이렇게 짓궂은 장난꾸러기이기는 했지만 공부를 게을리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과목들은 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독일어도 꽤 잘했다.
독일어 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우리 반에서는 작은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그 사건은 독일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들고 온 종이뭉치에서 비롯되었다. 선생님은 종이뭉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수업을 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며칠 뒤에 있을 독일어 시험의 문제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소근거리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날 때쯤 학생 하나가 불쑥 질문을 했다. 선생님이 그 학생 곁으로 다가가자 십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전에는 보기 힘든 열성들이었다. 그 때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나는 며칠 뒤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돌돌 말린 종이를 들고 친구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독일어 시험지를 하나 구했어. 기억나니? 엊그제 우리가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잖아. 그 때 몰래 꺼낸 거야. 너에게도 보여줄게. 그렇지만 적당히 몇 문제 정도는 틀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께 의심을 받게 돼." 작은 목소리로 말을 마치자 친구는 그 시험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자마자 나는 집으로 달려왔다. 훔친 시험지를 가지고 왔다는 생각에 약간 들뜨기는 했지만 그대로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두었다.
시험 전날 밤, 공부를 끝낸 나는 서랍을 열어 보았다. 시험지는 거기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보지는 않은 채 책상위에 시험지를 올려놓고 나는 멍하니 앉아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아무리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잖아. 남들도 다 보는데 뭐. 아냐, 너는 이미 공부를 했어, 이런 식으로 좋은 점수를 받고 우쭐대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니? 머리 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득 찼다. 마구 헝클어진 실타래 같아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난 스스로에게 네게 정말로 이것이 필요다니? 하고 물어 보았다. 선생님의 얼굴과 수업 시간에 내가 저질렀던 장난들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그동안 저질렀던 짖궂은 짓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쨌든 시험은 정직하게 봐야 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도 되새겨 보았다. 마침내 나는 더 이상 망설일 까닭이 없다고 생각되자 곧 그 훔친 시험지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시험 성적이 발표된 다음날 독일어 선생님이 교무실로 나를 불렀다. "난 실망했어, 너는 이번 시험엔 공부를 하지 않은 것 같구나.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는 없었니?" 선생님은 정말로 실망한 듯한 눈빛이셨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번 시험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른 학생들의 시험 성적은 그렇게 좋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자코 앉아 있는 나를 한참 바라보시던 선생님은 마침내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래. 이번 시험은 쉬운 시험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는 열심히 공부했어. 이제 알겠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뜻을 알아차리고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독일어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놀라운 발표를 했다. "이제 일 주일만 있으면 방학이다. 이틀 뒤 다시 한 번 시험을 보겠다."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을 놓고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시험의 결과는 역시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내가 지난번과 거의 비슷한 점수를 받은 데 비해 다른 아이들은 성적이 뚝 떨어졌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채점한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 사건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훔친 시험지를 보지 않은 것은 이제까지 내가 했던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그런 것을 철이 든다라고 하는 건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과 몸가짐에는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 날은 정녕 나에게 가장 좋은 날이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