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파 김상용 분석

 1  월파 김상용 분석-1
 2  월파 김상용 분석-2
 3  월파 김상용 분석-3
 4  월파 김상용 분석-4
 5  월파 김상용 분석-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월파 김상용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월파 김상용(月坡 金尙鎔) 분석
1] 작가의 생애와 활동
월파(月坡) 김상용(金尙鎔)은 1902년 경기도 연천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누이동생 김오남은 시조시인이다. 부친 김기환은 한의사로서 한약방을 경영하는 한편, 1만여 평의 농지를 소유한 지주였다. 1917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이 때문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서 제적되고 낙향한다. 연천에 있는 동안 결혼하고 그 뒤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1년 졸업했다. 그 후 일본 릿쿄(立敎)대학 영문과를 졸업(1927)하고 귀국하여 모교인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이화여전에서 영문학 교수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월파는 1926년 『동아일보』에 시 「일어나거라」를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출발하였고, 그 뒤 「이날도 앉아서 기다려 볼까」,「無常」,「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등 을 발표하고, 『동아일보』와 잡지『신생』에 투르게네프, E.A.포, 바이런, 테니슨 등의 번역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시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34년에 발표한 「남으로 창을 내겠오」를 비롯한 전원시풍의 시를 쓰면서부터였다. 1939년 『문장사』에서 시집『望鄕』을 출간했다.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영문학 강의가 폐지되자 이화여전을 사직하고 종로에서 장안화원(꽃집)을 2,3년간 경영하기도 했다. 광복 직후 강원도 지사로 임명되었지만 공무원이 체질에 맞지 않다고 여겨 수일 만에 사임했으며 이화여대 교수로 잠시 지내다가 1946년 미국에 건너가 보스턴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했다. 1949년 귀국하여 이화여대에 복직하였으며 1950년, 사회와 현실에 대한 풍자적 시각을 담은 수필집 「무하선생방랑기」를 『수도문화사』에서 간행했으며 이외에도 20여편의 산문집도 간행되었고 평론활동도 하였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되자 그는 숨어 지내다, 928 수복 이후 공보처 고문을 역임하고 『코리아 타임즈』의 사장을 지내다가 1951년 6월 20일 부산에서 게를 먹고 식중독에 걸렸는데 그 이후 왕진을 온 의사의 잘못된 투약으로 인해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시적 경향
1)시의 내용적 경향
김상용의 시작 활동은 크게 시조 및 민요형과 자유시로 구분되는 데, 초기에는 시조 및 민요로 출발하여 후에 자유시로 전환한 것이다. 김상용 시에 대한 연구 중 가장 깊이 있는 연구를 한 김학동은 월파의 시 세계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구 분
주요 작품 및 발표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