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광장〉의 감상과 교육방법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어렸을 땐 ‘공산주의’라는 말은 나쁘게 들렸다. 초등학교 때 내 소원은 다른 애들처럼 ‘삐라’를 주워서 선생님께 갖다드려 칭찬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①‘자본주의’나 ‘민주주의’만 완전하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용을 당한 것 같은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정작 화가 난 것은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고 당연시 받아들이던 내 모습이었다. 이런면에서 〈광장〉의 이명준은 부지런한 사람이다.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절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광장〉에 대한 해설의 한 구절이다. 소설이 씌여질 당시에 제기되던 문제들을 어떤 큰 틀에서 파악하려고 했다는 점이 이런 평가를 낳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40여년의 시간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주제가 여전히 우리에게도 문제시되고 있는 것일게다. 또한 이러한 매력으로, 주인공 이명준은 끊임없이 되살아나 독자들의 삶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 소설은 분단문제를 다뤘지만, 그것보다는 이데올로기 자체를 더 중요시하며, 그 이념이 한 인간의 광장과 밀실속에서 얼마나 제 역할을 잘해내 참된 삶을 살게하느냐가 〈광장〉에서 하고자 하는 말인 것 같다. 소설의 대부분은 이명준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따라서 줄거리는 거창해도, ②소설은 이명준 개인의 세계이다. 그러니까 바깥세계의 이념을 다루는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 인간 내면의 우주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③내 주위를 보면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을 좀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명준이 걱정한 것은 ‘그 속에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어떤 사람이든 자의식은 외부의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신의 우주를 담은 밀실은 사회라는 광장을 통해서 입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명준은 밀실과 광장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줘야 할 이데올로기가 삶을 얽매어 자유롭지 못함을 항상 고민한 것 같다.
이명준은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절박했던 밀실, ‘동굴’에서 ‘삶을 사랑하고자 한다. 중립국으로 가는 배안에서 그에게 힘이 돼주었던 것은 사랑했던 여인과 딸로 보이는 갈매기들이었다. 이제까지의 삶이 그렇게 힘들었건만, 마지막에 가선 우습게도 ’사랑‘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여 행복할 때 거기서 두 사람이 온전하게 설 수 있는 밀실인 동시에 광장이 마련되는 것이 아닐까? 그의 문제들은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차원의 ’사랑‘은 그가 남긴 해결책인 동시에 희망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희망을 위해서 푸른 광장인 바다고 투신한다. 결국, ④이 소설은 비극이 아닌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조차 낯설었던 자신을 깨달은 주인공이 그것을 찾기 위해 투신한 것이 어째서 비극이겠는가? 그가 절망했던 이데올로기의 실체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이명준이 평생 치열하게 꿈꿔오던 세계가 겨우 ‘사랑’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데올로기가 거창하고, 피안에 있어 잡을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말 이명준이 던지고 싶던 말은 어쩌면 “당신은 사랑하고 있습니까?”였을지 모르겠다.
-필자의 고등학교 독서일기 중에서 발췌-
①〈광장〉의 감상
〈광장〉은 명작이라기 보다 영원한 문제작이라는 타이틀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이 소설은 한국 문학의 6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이며 많이 읽혀온 만큼 잦은 비평의 대상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만큼 이들 작품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필자는 어느 한 가지 입장으로 정리될 수 없는 애매성이 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광장〉은 분단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시대 비판적이고 참여적이며 정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소설의 작가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전형적인 비판문학, 즉 리얼리즘의 방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두고 구체적인 현실을 포착하는데 실패했다거나, 지나치게 관념적이라든가 하는 평가를 내린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새삼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광장〉이 발표 직후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이유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시대적으로 ‘한 발 앞선’ 인물 설정 방법을 취했다는 점, 독자의 흥미라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인과 한국역사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과도하리만큼 진지하게 파고든 점, 최인훈의 당시 나이가 불과 24세였다는 점, 소설을 허구이며 이야기라는 통념을 일거에 깨버린 점, 소재작가적 상상력서술방식 등의 측면에서 충분히 ‘새로움’을 확보한 점 등을 꼽을 수 있으리라. 전례없이 탐구적이고 사변적인 최인훈의 작가적 자세가 419 직후의 표현자유의 터를 만나 뿌리를 내리면서 〈광장〉으로 발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위의 긍정적 요인들은 비판받을 수 있는, 또 극복되어야 할 문제점들로 뒤바뀔 수도 있다. 예컨대 과도한 진지성은 소설양식에 대한 이해력 부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조남현, 「廣場, 똑바로 다시보기」, 《문학사상》 통권 238호, 1992,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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