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사_이론과_역사인식(역사연구)
빈센트 반 고흐 1886~1887.
J. 토폴스키 著, 조성윤 譯
막스주의의 근본 원칙은 역사연구에 있어서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서만 행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막스의 이런 유물론적인 입장은 역사연구에서는 이론적 명제는 분명할 수 있지만 방법론에서는 지향적이지 못하다는 문제가 대주된다. 사실에만 치우침으로 인해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막스주의적 연구방법처럼 이론적 명제에서 주어진 상황만을 놓고 볼 때 그 내용이 왜곡될 수 있는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위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몇 장의 그림을 소개하고자 한다. 표지의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이다. 최근 빈세트 반 고흐 그림 한 장의 가격은 1300억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나 갖고 싶어 안달이 나는 이 그림을 그의 생전에 단 한 장 밖에 팔지 못했다. 그 이유를 “고흐의 그림은 인기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는 당시 시대의 상황을 이해해야만 납득이 되는 경우이다.
당시 그림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 만이 가능했다. 그들이 관심은 종교적 내용이나 환상적인 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정욕적인 모습을 원했다. 그들과 이질적인 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흐의 그림 속에는 일하는 노동자와 자연만을 담고 있었다.
고흐는 미치광이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귀를 잘라 고갱에게 보냈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권총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한다.
허지만 당시 그의 정신세계가 어떠하였을 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견딜 수 없었던 그의 고민과 걱정을 우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생활비는 동생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그는 물감을 살 돈을 구하지 못하여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다. 그의 그림이 미술상에 걸려 있으면 사람들은 더럽다고 눈살을 찌뿌리며 지나갔다. 그런 고흐와 같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던 이가 바로 고갱이었다. 고갱은 고흐와 같이 지내며 그림 공부를 하고 싶어했고 고흐와 같이 지낸다. 고갱은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흐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흐가 생활비를 요구할 때면 고갱은 야속하게 대했다. 고흐는 고갱이 차라리 떠나기를 원하지만 고갱은 떠나지 않았다. 고흐는 자신의 예술세계가 그에 의해서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쌓였고 극에 달한 스트레스는 결국 자신의 귀를 잘라 고갱에게 보내는 일을 벌인다. 고흐는 가난한 생활을 했다. 고갱은 부잣집 아들이며 당당하고 뻔뻔했다. 그는 노년에 타이티 섬에서 16세의 여인이 자신의 아들을 낳자 아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사건을 이론적인 명제로만 다룬다면 “고흐는 미쳐서 자신의 귀를 잘랐다”고 말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모든 사람들은 “고흐는 미쳐서 자살했다”라고 말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신발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왜 고흐는 이전의 화려한 인물들을 버리고 낡은 노동자의 신발을 주제로 삼았을까? 신발의 주인공들이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을 예견할 것일까?
막스주의 이론을 역사에 적용 시키는 데는 많은 오류가 범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는 항상 예기치 못한 흐름을 타고 변하고 있고 그 흐름의 중심에는 노동을 하는 사람과 자연이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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