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벤덤 파놉티콘
★왜 파놉티콘에 관심을 갖는가?
파놉티콘은 감옥 건축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감옥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벤담이 일생 동안 연구하고 생각해온 것, 즉 법률이나 구호 제도, 경찰 체계, 특히 교육과 노동, 경제 제도를 현실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표준 모델이다. 벤담은 파놉티콘을 통해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파놉티콘은 이익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세계를 구체화하는 장치이자 사회 곳곳에 설치하게 될 기본 장치였다. 파놉티콘은 벤담의 사고의 집약이자 그가 꿈꾼 유토피아의 축소판이다.
★제레미 벤담의 생애
영국의 철학자 ·법학자로서 런던 출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다소 독재적이었으며 자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랐다. 예닐곱 살에 그는 웨스트민스터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이곳이 시대착오적 교육체계로 학생을 혹사시키는 나쁜 학교로 회상했으며 그래서 그가 구상하고 있는 학교는 이와 반대로 통학 제도를 기반으로 기술적, 과학적 유용성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는 1760년 옥스퍼드대학교 퀸스 칼리지에 입학해서 1763년 학위를 받았다.
그해 11월 링컨스 인 법학원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했다. 그는 주로 법 남용의 이론적 측면에 관해 사색하거나 화학실험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변호사 자격을 얻자마자 한두 건의 소송을 맡았으나 패소해 아들이 대법관이 될 것으로 굳게 기대하고 있던 아버지를 실망시켰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 이론가로서의 길을 결심한다. 1789년에 을 출간하면서 법이 과학적이고 계산된 유용성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벤담은 감옥개선의 선구자로 손꼽히는데, 벤담은 당시 혼란스러웠던 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감옥을 선택해 바꾸기를 주장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는 자신이 제안한 원형 감옥(Panopticon)이 채택된다면 "도덕이 개선되고, 건강이 유지되며, 산업이 활성화되고, 교육이 확산되는" 등 여러 가지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해에 걸쳐 정부에 이 제도를 채택하도록 권유했지만 결국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도 노동과 검소를 삶의 규칙으로 삼았고 칩거 생활과 고독, 엄격한 식단을 고수했다. 종교적 자선에 반대하고 모든 것을 경제 질서 하에 두고자 했으며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은 계산 되어 있다"고 말했다. 1832년에 84세의 나이로 죽은 벤담은 시신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기를 원했기에 런던 대학에 공공에게 전시되어 있다.
★벤담의 공리주의
벤담은 공리성(功利性)에 대해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게 하는 원리’로 규정하고 있으며 ‘보편적인 혹은 일반적인 행복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 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법이 따라야 할 것으로 과학적이고 계산된 유용성을 제시한다. 어떤 행위가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을 가질 때 옳은 행위이고 반대의 경우는 그른 행위라고 믿으며 행위의 기준 원리를 고통과 거리 두기, 쾌락의 추구로 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행위자의 행복이 아니라 행위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행복이다. 따라서 모든 입법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어야 한다. 행복은 산술적으로 계산이 가능하며 인간의 모든 가치는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유용성의 원리에 입각해 모든 처벌은 고통을 수반하는 악이므로 더 큰 악을 배제할 수 있을 때에만 적용되어야 하며 범죄자를 교화하거나 범죄를 막고 다른 사람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범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할 수 있을 때만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벤담이 처벌을 정당화 하는 것은 다수의 유용성, 필요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신체에 대한 처벌에 저항하며 사용제도에 반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명한 손실이며 국가나 다수의 사람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용성은 결과를 중심으로 판단되기에 과정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다.
★파놉티콘의 설계
▷ 벤담은 왜 파놉티콘을 구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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