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만주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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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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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만주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운동
1)조선공산당만주총국의 결성
1926년 5월 조선공산당에서 파견되어 만주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이 결성되었다. 결성초기에는 화요회계와 상해계가 함께 참여하였으나 1927년 간도공산당 검거사건을 계기로 다시 세파로 분열되었다. 1928년 말경까지는 만주지역의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과 연합하여 민족유일당을 결성하고자 하였다. 또한 한인의 사회 경제적인 안정과 튼튼한 민족운동 기지를 구축하고자 자치 기관을 결성하기 위한 활동도 전개하였다. 게다가 동만 지방을 중심으로 반종교 운동을 전개하면서 광범위한 인텔리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한편 사회주의사상을 농민층에게까지 전파시켰다.
2) ‘1국1당 원칙’과 중국공산당 입당
1928년 12월 코민테른에서는 「조선공산당 당내 정세에 관한 코민테른집행위원호의 결의」를 통해서 조선공산당의 지부 승인을 취소하고 1국1당 원칙을 준수하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처벌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에게 다시 조공을 재건하라고 지시하였다. 이후 만주 지역의 사회주의자들은 코민테른의 방침을 따라 중공당에 가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공당의 가입을 놓고 각 그룹 간에는 이견이 존재하였다. 중공당의 가입을 거부하고 만주부를 설치하는 그룹과 집단가입을 시도하는 그룹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중공당의 가입에 대한 한인 사회주의자들의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3) 청년의 좌경화와 타도제국주의동맹
타도 제국주의 동맹의 건설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1926년 설은 신주백에 의해서 비판되어 지고 있다. 신주백의 의견을 따라면 국민부 내에서 청년들 가운데 일부가 1929년 결성된 남만 한인 총동맹과 함께 활동하면 좌경화 되어 국민부를 비판하고 재건설계와 친숙한 태도를 보이다가 중공의 입당문제로 재건설계와도 결별하게 되고 1930년 8월 부터는 국민부도 비판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 속에서 조선혁명군 길강성지휘부, 재만조선혁명군사령부, 세화군, 동방 혁명군을 각각 결성하게 된다. 이때 타도제국주의동맹은 1929년 하반기 또는 1930년 초에 좌경화하고 있던 국민부 내 청년층의 일부가 ML계를 반대하면서도 재건설계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정치적 태도를 지니면서 결성한 조직이었다.
4)민생단과 반민생단 투쟁
1931년 일제는 만주를 침략하게 된다. 이에 한인들은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동만지방과 같이 민족주의 세력이 취약한 곳에서는 만주 사변이 일어나자 반공, 친국민당의 정치적 태도를 보이던 일부와 친일파들이 한인의 안정과 자치, 반공을 내세우면서 반공 단체인 민생단을 결성하게 된다. 하지만 민생단은 동만특위의 저항에 부딪치게 되고 결국 1932년 10월에 해산하게 된다. 그런데 이즈음부터 중공내부에 만연해 있던 좌경적인 경향과 일제의 강력한 탄압에 동요가 일어나면서 파벙주의자=민족주의자=민생단원이라는 공식이 생겨나면서 반민생단 투쟁이 전개되게 된다. 이 반민생단투쟁은 매우 격렬하여 동만특위 지도 아래에 있던 부대들은 일제와의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오히려 이 반민생단 투쟁에 의해 죽은 사람이 더욱 많았다. 이 반민생단 투쟁으로 인해 1920년대부터 활동하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제거됨으로써 강제적으로 세대교체가 일어나게 된다.
5)재만조선인조국광복회
1936년 미혼진회의에서는 ‘반제민족통일전선방침’이 전달되었다. 회의에서 ‘민족혁명당’을 결성하는 대신에 ‘재만조선인 조국광복회’를 결성하기로 확정하고 ‘한국혁명군’을 결성하는 대신에 동북항일연군 제2군을 2개 사에서 3개로 확대 개편하여 김일성을 제3사의 사장에 임명하고 한중 국경지대에서 활동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장백현 일대를 중심으로 조선광복회가 결성이 되었으며 1937년 6월에 보천보 전투가 있었다.
-‘재만조선인 조국광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