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한국전쟁을 보는 다양한 관점들
*한국 전쟁의 기원에 대한 논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냉전의 기원에 관한 논쟁을 이해하여야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전개된 냉전이 언제 어느 쪽에 의해 먼저 시작되었느냐에 관한 논쟁의 연장선 위에서 한국 전쟁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1. 전통주의(傳統主義)적 관점
한국 전쟁의 기원을 다루는 데 있어 전통주의 학자들은 한국 전쟁은 공산주의자들이 세계 공산화의 일환으로 스탈린이 명령하고 모택동이 지원하여 김일성이 집행한 전쟁이라고 보고 한국 전쟁의 책임을 일단은 소련, 중공,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 입장은 미국-한국 정부와 기존 미국-한국학계의 지배적인 한국전쟁관으로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팽창주의적인 ‘세계적화야욕’과 북한이 철저하게 소련에 의해 통제되는 괴뢰정권이라는 점을 그 기본전제로 하고 있다.
스탈린의 ‘침략적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은 ‘한국 전쟁은 스탈린에 의해 계획되고 준비되고 주도되었다’ 는 달린(David J. Dallin)교수의 짧은 표현 속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월프(Thomas W. Wolfe)교수도 ‘한국전쟁은 본질적으로 소련이 고취시킨 것’ 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 스탈린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이라고 전통주의자들은 설명하는가? 수정주의자인 플레밍은 그것을 다음의 6가지 추론으로 정리했다.
첫째, 압력 분산설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창설로 대표되는 유렵에서 가중되는 미국의 군사적 압력을 극동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한국 전쟁을 도발했다는 주장이다.
둘째, 미일 조약견제설 또는 극동 전략설이다. 소련을 배제시킨 채 미국이 일본과 단독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려고 하자, 이것을 견제하기 위해 소련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는 설명이다.
셋째, 허점 공격설이다. ‘팽창주의자’ 인 스탈린은 소련의 세력권을 확장하기 위해 언제나 허점을 노리고 있었는데 미국이 1949년 여름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고 1950년 1월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을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외시킨데다가 1950년 5월 총선거에서 이승만, 김성주 계의 우익 보수 세력이 패배하자 한국을 허점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대륙 제패를 미국이 ‘방관’한 사실은 북한이 남침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허점 공격설은 미국의 개입 여부에 대한 소련의 계산 착오를 강조한다.
넷째, 미국의 결의 실험설, 또는 저항력 실험설이다. 스탈린이 자신의 세계 적화 대전략‘을 실천하기에 앞서 미국과 서방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남침을 시도했다는 주장이다.
다섯째, 무력 시위설이다. 중국대륙의 적화에 이허 북한의 남침으로 손쉽게 남한적화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의 위신을 떨으뜨리고 소련의 무력을 과시함으로써 아시아의 다른 지역들의 공산 세력들을 고무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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