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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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31)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조선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동안 중국 측은 불안한 눈으로 사태를 보고 있었다. 인천 상륙 작전 전 중국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타이완 침공 작전에 관한 부분이었으며,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공군력과 해군력이 필요했으나 당시 중국은 공군, 해군력이 부재하였기 때문에 저우언라이 등에 의해 타이완 공격은 연기되었다. 반면에 한국전쟁에 관한 부분은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미국의 전면적 개입을 통한 반격이 거의 확실시 되어가는 가운데 중국과 미국의 군사력의 비교가 논의 되었으며 이에 대해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군대의 수량, 부대의 질, 보급 등의 부분에 있어서 미국의 원자폭탄과 공군력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이 우세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한편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면서 전세가 달라지자 9월29일 북한지도부는 스탈린에게 원조요청을 한다. 스탈린은 미국과 세계 각국의 눈때문에 직접적 병력지원은 할 수 없지만 군수물자 지원을 약속하고 중국에 의용군 파견 요청할 것을 약속한다. 10월 2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이것을 논의하여 마침내 참전하기로 결정한다. 결정 후에도 중공당과 정부 안에는 출병신중론이 강하여 마우쩌뚱의 필사적 설득으로 10월5일 즉시 출병을 결의하였다. 그 후 소련의 공군력 원조를 구하지만 스탈린은 공군출동 요구는 거절하나 군용장비 공급은 하겠다고 한다. 마우쩌뚱은 소련의 공군 파병 거절에 명령 실시를 잠시 보류하나 12일 긴급회의에서 중국 참전을 적극 지지하여 최종결정을 내린다. 이 연락을 받은 스탈린은 적극적인 자세로 10월 중순이후로는 북한마크 비행기를 탄 중국공군 비행사 옷차림의 공군부대를 은밀히 파병한다. 이때도 소련은 자신들의 참전을 공식화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10월19일 중국군은 드디어 압록강을 넘어 진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