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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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1. 유치 배경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렸던 최초의 월드컵이 성황리에 끝나자, 4년 뒤에 치를 월드컵은 누가 개최할 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때 당시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당이 지배하던 이탈리아가 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나섰다. 전 유럽은 독재자 무솔리니가 파시스트 정권을 홍보하기 위해 월드컵을 이용하려는 속셈을 알아차리고 이탈리아가 개최하는 것에 반발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측에서 월드컵 본선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지원하고 8개 도시에서 개최하겠다고 공언하여, 결국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었다.

2. 예선과 본선
이탈리아 월드컵에는 총 31개국이 참가 신청을 하였기 때문에, 월드컵 본선에 올라갈 16팀을 골라내야 했다. 이후 1978년까지 월드컵 본선 진출국은 16개로 한정되었다. 31개국은 11개 그룹으로 나뉘어서 예선을 치루었는데, 각 그룹의 본선진출국 결정 방식이 다 제각각이었다. 제 1회 대회 우승팀인 우루과이는 이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유럽 국가들이 참가를 꺼렸던 것에 불만을 품고 보복 차원에서 예선에 불참하였다. 강국 우루과이가 빠져나가자 무려 32개국이 참가 신청을 냈다. 그리고 예선 방식은 개최지가 정해지기 전에 결정된 사항이었기 때문에 개최국 이탈리아도 예선에 참가하였다.
본선 경기
16개국이 토너먼트를 치러 우승국을 결정하였다. 1차 토너먼트에서 아메리카 팀들(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이 전부 탈락하여, 2차전인 8강전부터는 유럽 국가들만의 경기가 되어 버렸다. 이는 당시에 원거리를 이동하는 수단이 선박이 유일했고, 아메리카에서 유럽까지 항해하는 데에만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메리카 팀이 기나긴 항해에 지쳐서 본선 경기에 무력하게 임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도 자국에서 개최하는 월드컵인데다, 무솔리니가 월드컵 유치를 천명할 때 내걸었던 공약이 “대회의 최종 목적은 파시즘을 스포츠의 위대함으로 보여주는 데 있다”고 하여서, 이탈리아 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기에서 이겨야만 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우선 자국의 엄격한 군 복무를 피해 남미나 다른 국가로 도망간 축구 선수들을 다시 이탈리아 국적으로 복귀시켰다. 이렇게 해서 결승전의 ‘환상적인 골’의 주인공인 오르시를 영입하였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1회 월드컵의 결승전 진출 국가들)의 우수한 선수들을 회유하여 이탈리아로 귀화시켰다. 이 중에는 193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뛰었던 루이지토 몬티도 포함되어 있었다.(현재 이런 방식의 선수 수급은 당연히 불법이다.) 이리하여 이탈리아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무장하여 월드컵 본선에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반칙에 가까운 선수 빼가기에 분노한 아르헨티나는 1군 선수들을 더 빼앗기지 않기 위해 2군 선수들을 선발하여 본선 경기에 보냈지만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3대 2로 패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