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확천금의 꿈 -구운몽의 재해석
-구운몽의 재해석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진 요즘 우리사회에는 한탕주의가 만연하다. 성공을 위한 과정은 상관없고 오로지 그 결과만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익추구의 방법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여도 그것이 큰 이익을 준다면 모두들 혈안이 되어 덤벼든다. 이러한 한탕주의는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약간의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을 역전하는 이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간 저렇게 될 수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한방만을 기다리면서 노력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자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가진 한탕주의에는 문제가 많다. 그렇다면 한탕주의의 문제는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구운몽이라는 소설과 결부시켜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구운몽을 보면 주인공인 성진이 꿈속에서 상당히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성공하고, 뛰어난 미모의 여성들은 그와 만나지 못해서 안달이 날 정도로. 꿈속에서 그의 인생을 요즘 유행어로 표현해보자면 ‘엄친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점이 한탕주의의 문제점과 결부시킬 수 있을까. 일단은 주인공이 승려였다는 사실을 재조명해봐야 한다. 승려라 함은 무엇인가. 나는 그들을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자아성찰과 수련에 매진하는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속세와 인연을 끊은 그들은 인생 한 방에 대한 갈망을 하지 않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승려들은 수행 중에는 종파에 따라 경전을 통달하고, 이를 통해서 점차적으로 깨달음을 얻어가는 방법이 있지만, 염화미소(拈華微笑)와 같이 순간적으로 득도의 경지에 다다르는 방법도 있다. 전자는 사회에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성공을 쟁취하게 되는 상황과 유사하며, 후자는 한방에 인생이 역전되는 경우와 유사하다. 물론 신성한 수행을 통해 득도를 하는 것과 한탕주의를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심지어 이것은 종교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본다면 유사한 점이 많다. TV에서 수행을 하던 자가 득도를 하게 되었을 때, 진리와도 같은 도(道)를 얻었다는 황홀감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만약 당신이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생각해보자. 밤에 앞으로 이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잠이 안 올 정도로 설레고 황홀할 것이다. 비록 수행을 통해 득도를 하는 과정에는 참기 힘든 절제와 인내가 필요하지만, 그 결과면 에서는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것이기 때문에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주변사람들이 당신을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승려들도 득도라는 인생역전 커다란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운몽에서는 팔선녀가 등장한다. 이들이 성진을 희롱하는 것이 이야기의 발단이 된다. 이들 역시 깨달음을 얻고 나중에 신선이 되지만, 나는 이들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인다. 이들이 성진을 희롱하는 상황을, 내가 봤을 때에는 사회적 약자를 얕보는 것으로 보였다. 그 시대상으로 봤을 때 승려가 사회적 약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종교의 특성상 승려는 욕구에 대한 제약이 많았던 신분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인 식욕과 성욕을 억제해야한 했고, 이를 겉으로 표출할 수조차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욕구가 좌절된 상황이 바로 성공에 대한 욕구가 좌절된 우리사회의 사회적 약자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그를 희롱하던 팔선녀들은 속세의 꿈속에서는 성진을 향해 모여든다. 물론 현실에서도 인연이 있었으니 꿈에서도 인연이 닿아 만난다는 설정이지만, 꿈속에서의 상황만 보면 그녀들은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남성에게 의탁하여 안정된 삶을 꾀하려는 여성의 심리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꿈속에서 성진은 누구보다도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누구보다도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성공의 가능성이 많은 남성 이였다. 요즘 사회로 치자면 전문직, 소위 말하는 ‘-사’직업을 가진 남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남성들은 배경 또한 준수한 경우가 많다. 이런 직업과 배경을 가진 남성들은 1등 신랑감으로 대우받는다. 높은 소득과 많은 여가시간, 그리고 준수한 배경은 물질만능주의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는 최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다시 구운몽으로 돌아가 보면 팔선녀들은 필연적으로 성진과 한 번씩 조우하게 된다. 그 잠시 동안의 운명적인 만남이 끝나고 나서도 그녀들은 성진을 잊지 못하고 그를 향해 모여든다. 이를 한 남자만을 섬기는 열녀의 자세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요즘 사회상으로 봤을 때 이는 1등 신랑감을 향해 모여드는 여성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의 여성들 중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자신의 발전을 꿈꾸지 않고 그저 즐기고 꾸미고 치장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여성들이 꽤 많다. 다시 말해 젊은 나이에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인격적인 성장과 성공적인 삶을 도모하기 보다는 젊음은 한때이니 한번뿐인 인생 화끈하게 놀아보자는 식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진을 향한 팔선녀들의 자세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저 자신의 인생 한방 역전을 위하여 1등 신랑감을 찾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한탕주의가 만연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성공에 더욱 집착하고 있다.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끼게 됐으며, 이 때문에 인생을 헛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구운몽이 창작될 당시 사회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물론 그 당시 자본주의와 한탕주의가 존재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 역시 입신양명(立身揚名)에 집착하는 태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구운몽의 지배적인 사상은 공(空)사상을 바탕으로 한 불교사상이라고 한다. 인생을 시작할 때는 모두 빈손으로 시작하고, 인생과 작별을 하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고 한다. 하지만 예부터 시작할 때 빈손으로 시작하는 것은 서민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지배층이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인생을 시작하는 자들의 손에는 이미 성공의 반이 쥐어져있었다. 반이 아니라, 거의 전부가 쥐어져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현대의 경우 부와 권력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지켜할 의무조차 피할 수 있고, 법을 어겨도 그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재능으로 성공하는 엄친아와는 달리 후천적인 요인으로 인해 엄친아가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욕구가 별 어려움 없이 충족되는 삶을 살게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면모를 지닌 채 성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삶을 살게 되면 자아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기 때문에, 자아형성을 완전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큰 피해이다. 엘리트교육의 대상자로써의 올바른 역할을 해야 할 인재들이 제대로 자아조차 형성하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다면 그 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는 동안 아등바등 성공하려고 하다보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안 해도 될 걱정에 삶이 더욱 초조해질 뿐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한 삶을 산다거나, 비루한 집안에서 태어나 목구멍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운 삶을 산다고 해서 마지막의 결과가 다른 것은 아니다. 단지 사는 동안 그 과정만이 다를 뿐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가졌던 모든 것을 이 세상에 주고 잠시 떠나왔던 자연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래서 구운몽에서도 당시 퍼져있던 성공에 집착하는 인생의 자세를 경계하기 위해 공(空)사상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고전작품과 현대를 결부시켜 말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황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에는 흐름이 있으며 현재는 과거의 반복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속에서 배울 점도 찾을 수 있고, 개선해야 할 점도 함께 알아 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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