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 현대철학-몸, 주체, 권력 - 5-4몸-주체 - 몸-권력 - 4 습관과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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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예술과 현대철학-몸, 주체, 권력 - 5-4몸-주체 - 몸-권력 - 4 습관과 훈련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과목명
문화예술과 현대철학
교재
몸, 주체, 권력5-4
몸-주체 / 몸-권력
4. 습관과 훈련
들어가며
세계에 대하여 열려있는 존재는 세계를 습관으로 수용한다. 반면 세계에 의해 규율된 존재는 그것을 훈련으로 수용하게 된다. 같으면서도 다른 듯한 이 습관과 훈련 사이에는 접점이 없는가? 메를로퐁티의 습관이 든 몸과 푸코의 훈련, 훈육된 몸은 양립불가능한가?
1. 습관과 지향성
우리는 어떻게 습관이 드는가? 생활의 달인에서 보여주는 달인들은 눈을 감고도 순식간에 만두를 빚을 수 있고 실처럼 가느다란 채썰기에 도전한다. 그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시각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몸에 길이 들어서’ 자신이 익숙하게 해온 활동을 거침없이 지속해나간다. 우리가 어떠한 작업을 할 때, 그것이 습관화되었다고 한다면 그 작업의 수행에 필요한 도구와 주체, 그리고 그러한 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은 사실 하나의 몸처럼 움직인다. 차를 운전할 때에 차를 운전하는 행위, 곧 주행은 운전자가 차에 탑승해서 차를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개시되는데 이때 초보운전자는 차와 운전하는 자신을 따로 놓고 기존에 쌓아두고 있던 공간지각능력을 극도로 발휘하여 도로주행에 임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한직진 또는 차 사고 등 목표달성에 부자연스러운 데에 치닫게 된다. 반면 능숙한 운전자는 차 자체가 자신의 몸이다. 즉, 자신의 물리적인 육체는 나의 피부를 벗어나지 않지만 실제로 그 상황에 임하는 나의 주체(성)은 세계에 뻗어나가 있으며 그 감각은 나의 피부가 아닌 자신이 상황에 달려나가는 하나의 단위인 차량의 표면으로까지 뻗어나간다. 따라서 그는 마치 자신의 몸을 돌리듯이 자신의 차량을 불법유턴하며 아슬아슬한 주차도 무리없이 해내게 된다.
이처럼 세계에 뻗어나간, 상황에 참여하고 있는 주체는 육체를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상황의 도구가 결합된 ‘몸 스케마(이하 몸틀)’를 가지며 이러한 몸틀은 내가 지금 움직이고자 하는 것들과 내 몸이 직접적으로 관련되면서 통일되는 체계이다. 이러한 몸틀이 존재하는 공간은 몸틀과 분리된 공간을 의미하는 ‘위치의 공간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공간성’을 갖는다. 상황의 공간성은 주체에게 주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주체가 삶으로 존재하는 공간이자 주체가 삶으로 개시되는 상황에 의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몸틀에 의해서 점차 육화된다면 그 상황과 공간도 나의 몸으로 통일되는데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습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향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메를로퐁티에게 있어 지향성은 다른 말로 지향 궁(弓)으로 표현된다. 활은 무엇인가? 활은 화살만 있다면 화살이 무엇인가에 날아가게끔 겨냥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화살이 아무리 날카로운들 활이 겨냥해주지 않으면 화살은 날아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에 있어 물리적인 육체가 인식적으로 마주하는 어떤 물체는 그에게 향하는 화살같은 시선과 대상만 있는 것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겨냥하는 하나의 지향성을 전제한다는 것이 지향성의 개념이다. 이러한 지향성은 우리 신체의 물리적 성격이 물리적인 대상을 향할 때 물리적 속성 이면의 어떠한 작용이 있음을 구상해내게 한다. 이때의 지향성이 발휘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겨냥시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겨냥시킴으로 어떠한 행위에 일종의 경향적인 특징, 일종의 벡터와 같은 기능이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음’과 ‘함’ 사이에는 행동이라고 하는 물리적인 액션인 스칼라가 있다. 그러나 이 물리적인 액션에는 ‘함’의 대상에 대한 겨냥이 들어가 있으며 특히 이것이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것이라면 이때의 ‘함’에는 단순한 물리적인 액션만 개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무의식의 겨냥이 존재한다. 이러한 액션과 겨냥의 결합이 바로 벡터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행위는 단순히 물리적인 행동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침잠해 있는 모종의 겨냥성이 있다는 점에서 벡터와 같은 것이며 결국 우리의 행동은 벡터로 결합된, 무의식적으로 결부된 어떠한 행위의 틀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성적인 자극에 반응을 내지 못하는 슈나이더는 성에 대한 지향을 잃음으로 성적인 몸의 틀을 상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은 ‘고유한 몸’을 갖는다.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살고 있으며 현상적인 공간을 사는 주체는 고유한 몸을 갖는다. 이 고유한 몸은 지향성을 통해 하나의 운동을 지성적으로 표상하지 않고도 순식간에 운동하여 과제를 달성한다. 빗질, 운전 등 모든 우리의 자연스러운 행위는 결국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도구를 자연스럽게 몸에 통합한 것이며 이렇게 통합된 몸은 몸틀과 습관로 살아간다. 습관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통합으로 인해 ‘습관은 우리의 세계에의 존재를 확장하거나 새로운 도구들에 우리를 합병시키면서 실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2. 습관과 문화
이와 같이 상황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내재화 또는 통합한 몸의 습관은 결국 세계를 획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습관이 들게 되면 우리는 굳이 반성적이고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우리는 상황에 따른 과제를 선반성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현상이 가능한 것은 기존에 간직하고 있던 대상에 대한 이해가 끝없이 대상과 만나면서 발달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것이 침전되면서 휘발하지 않고 획득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이전부터 습관적으로 축적해온 잠재적 앎을 사용하며 이러한 앎은 개인의 삶의 역사에서 침전된다. 또한 개인적인 삶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시대와 그 문화, 인류의 진화사가 침전시킨 능력도 포함하기 때문에 우리의 아주 일상적인 행위는 나도 모르게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맹목성을 띄기도 한다. 마치 파란 하늘을 보고 파랗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이 점에서 우리의 앎은 침전의 산물이 된다.
반면 전혀 우리가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것에 마주하여서는 기존의 지식이 새롭게 발달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즉, 파란 하늘을 파랗게 여기는 것이 인류의 진화사와 개인적 삶의 역사, 그리고 그 시대에 파란색을 파란색으로 보는 문화의 소산이라면 처음 접하는 대상, 특히나 현대사회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IT 기기는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삶의 양식을 요구한다. 폴더폰을 쓰던 사람이 처음 스파트폰을 이용할 때에는 그것을 붙들고 적어도 하루 이상을 헤매야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사용해 오던 핸드폰의 개념이 최소한 컴퓨터와 터치스크린과 결합함으로써 혁신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렇기에 IT기기에 대한 습관을 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의 지식과 그것의 혁신적 발달을 요구하는 IT기기에 대한 지식을 몸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침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침전으로부터 연역되어 나온 새로운 지식, 그러나 그것은 언어의 형태가 아니라 몸짓의 기억, 습관까지 개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