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아내의 상자』는 현대인의 존재론적 비극성과 아픔을 그린 은희경의 단편소설로, 현시대의 규격화되고 자아 본연에 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1997년 발표 되고 - 이 작품은 《현대문학》(1997. 4)에 〈불임파리〉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심사위원들이 소설의 일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제목이라 바꿀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 1998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는 단순한 아내와 남편의 관계 속에서 현대적 삶의 비극성으로 시야를 확대시켰다는 점이다. 가벼운 즐거움, 아니면 독자를 외면하고 철저한 예술성에 기인하는 작품으로 양분되는 세태에서 은희경의 작품은 이 둘을 고루 가지고 있는 잘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알맹이만 모아서 각종 장치들로 잘 엮어놓은 이 작품에는 재미와 문학성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의 매력은 각종 상징적 소재들의 적절한 배합과 유기적인 연결로 인해 단편 소설이지만 장편 소설 못지 않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배경과 상징이 주제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통한 소설의 미의 완성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아내의 상자』에 나타난 배경
(1) 상황적 배경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에 나타나는 아내의 방은 외부와 단절된 소외된 내면 의식의 세계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 같은 상황이 곧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내의 방에 들어가본다.
푸른빛이 감도는 벽지, 벽을 향해 놓인 독일식 책상과 창가의 안락의자. 그 사이로 알 수 없는 희미한 향기가 떠다닌다. 그리고 상자들.
아내는 상자를 많이 갖고 있다. 어떤 상자에는 그녀가 한 계절 내내 손가락을 찔려가며 십자수를 놓은 탁자보가 들어 있고 어떤 상자에는 편지 뭉치가 들어 있다. 편지는 모두 종이색이 누렇게 바래고 잉크가 번진 오래된 것들이다. 최근에 그녀에게 편지가 오는 것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중략)……
아내의 방에 있는 오래된 편지들과 상자들, 최근에 그녀에게 편지가 오는 것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것과 이러한 상황들은 외로운 방 주인인 아내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아내의 방에 들어가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너무 잘 정리되어 그것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독일식 책상 위에는 메모지 하나 없이 꽁무니에 지우개가 달린 노란 연필뿐이었다. 아내는 책을 펴기 전에 언제나 저 연필을 찾았다. 나는 아내가 그 연필로 무엇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필은 키가 아주 작아져 있었다....
잘 정리된 책상 위에 놓인 지우개 달린 노란 몽땅 연필의 노란색은 지루함과 고독한 내면을 상징하고 있으며 아내가 그 연필로 무엇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키가 아주 작아져 있었다는 것을 통하여 남편이 보지 않는 곳에서 그 연필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썼다는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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