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개론 벤담의 질적 공리주의
흔히 우리는 이것의 가치는? 저것의 가치는 ? 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리고 한 물체에 대해 어떤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이거나 한 평가를 세우고 그에 따라 가치를 두곤 한다. 그런데 가치란 무엇일까? 가치는 기계적인것과 본질적인 유형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기계적 가치는 다른 가치로 이끄는 것이고 본질적인 가치는 그 자체를 위해 소중히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물에는 본질적인 질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기계적인 가치를 찾기 어렵고 본질적인 가치에도 기계적인 요소가 나타나서 모든 가치가 협력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가치라는 것에 대하여 본질적인 면만 중요하고 필요한 것 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치라는 특징자체가 둘로 이분하여 설명이 안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쾌락주의 같은 경우는 사람에게 쾌락을 주는 것에 가치를 두고 고통을 주는 것을 경시하였다. 그리고 밀은 질적인 쾌락을, 벤담은 양적인 것에 가치를 두었는데 고대의 소피스트부터 밀까지 보면 쾌락주의 자 들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쾌락을 원한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을 원했던 것을 배웠었다. 따라서 물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 좋은 말 이긴 하지만 정신적인 질을 추구하는데 양을 더 높은 가치로 세우고 또한 실질적으로 최대다수에게 최대 행복이라는 것이 이상적이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벤담의 질적 공리주의는 쾌락주의 에서도 비난을 받을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위와는 반대로 형식주의 의 가치는 행동 뒤에 있는 올바른 원리에서 발견된다고 했다. 즉 형식주의는 과정을 중시하는 반면 쾌락주의는 결과를 중시하는 것 같다.
나는 수능을 보면서 지금까지 공부 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수능 결과 에 따라서 나의 대학이 결정 되는 것 을 보면서 결국 결과만 중시 될 뿐 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과 뒤에 과정에 대해 정말 내가 열심히 했는가? 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앉아있는 시간 만에 대해 가치를 두었다. 그런데 정작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가 에 달렸고 나는 그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쾌락주의 보다는 형식주의를 염두 해 둘 것 같다.
이상주의 자 들은 가치는 우주에 대한 객관적인 구조나 우주의 목적을 드러낸다고 했다. 자연주의자는 자연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 이외에 가치가 존재 할 수 있는 영역을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연과학은 인간의 생활의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가치나 이상의 세계에 관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한편 이상주의는 인간에 대해 최상의 존재라고 말하고 기독교 실재주의는 신의 피조물이라고 했는데 따라서 이상주의에서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실재주의는 신 에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삶의 모든 것의 목적이 신이 지정한 것이고 신에게 보여 주기 위한 책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한 책임이라면 궁극적으로 그 책임은 자율적이 아니라 타율에 가깝지 않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재론자는 인간이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신이 최초에 기대했던 가치를 이해하고 발전시키고 즐길 수가 없다고 했다.
실재론자에게 있어 가치는 오로지 기독교적 생활에 대한 신의 의지인 것이다. 인간의 생활은 자신이 낭비해 버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으로 의 효과가 크기도 하겠지만 우리 학교처럼 강압적으로 신의 목적을 달성하라는 식 으로 한다면 그것은 목적과 가치를 이루 기는 커녕 불만만 쌓일 것이 라고 생각된다.
듀이는 인간이 그들의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에서 문제를 만났 을 때만 사고하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진리는 포함된 특별한 상황에 의해 결정 되어 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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