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론적 배경
▶ 시대적 배경
행위의 기준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즉 사회의 최대다수 구성원의 최대한의 행복을 구하는 윤리이다. 주로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윤리로서, 정치학설에서 공중적 쾌락주의와 같은 뜻이다. 목적론적 윤리의 한 형태이지만, 이기적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또 내면적 윤리에 대해서 사회적외면적 도덕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18세기의 영국철학을 산업자본주의 형성기의 철학이라고 한다면 19세기의 그것은 산업자본 확립기의 철학이라 하겠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이 세기의 철학·사상에는 전세기의 그것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창조성,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이 그 경이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19세기 초두에 눈부신 활동을 보인 것은 벤담에서 시작되는 공리주의학파였다. 이것은 18세기의 이른바 영국 고전철학의 계승발전이었으며 근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결론적 성과가 거기에 나타났다 그리고 산업혁명을 기장 일찍 이룩한 영국에서는 근로대중의 신분의 평등적 운동이 많았다. 또한 영국의 중산계급은 선거법 개정법안의 선에서 민주주의를 수습하고,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량에 의해 사회개혁을 달성하려 하였다 이러한 중산계급에 대응하는 철학이 또한 공리주의였던 것이다.
▶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공리주의는 크게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로 나눌 수 있다. 벤담이 양적 공리주의를 외쳤다면, 밀은 질적 공리주의자로 불리운다.
공리주의의 창시자 격으로 대우를 받는 벤담이 제시하는 기준은 유용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만이 쾌락과 고통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벤담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쾌락의 양을 최대한 늘리고 고통의 양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공동체에 봉사를 한다고 할 때에도,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공동체에 속한 개별 구성원들의 이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 개인들을 넘어선 어떤 공동체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동체 자체는 일종의 허구이고, 오직 개별적인 구성원들만이 실재할 뿐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이익이란 그 구성원의 이익의 총체에 지나지 않는다.
벤담에게 있어 유용성의 원리는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준칙이고 최고선이다. 이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행위가 옳으며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그 행위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최대 행복을 증진시키는 행위는 곧 우리가 수행해야할 옳은 행위이며 우리가 행해야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또, 벤담의 유용성은 측정 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양적이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다. 우리가 행한 행위의 결과들을 검토함에 있어 우리는 그 행위가 산출하는 쾌락과 고통의 양을 판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떤 행위의 선택이 고통을 능가하는 최대한의 쾌락을 산출하는지 또는 가능한 최소량의 고통을 산출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금전이 지속성면에서, 효율성면에서 우리가 쾌락을 얻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라고 하는데, 벤담의 문제점은 여기서 여실히 드러난다. 같은 수치의 돈이라는 것은 거지에게나 백만장자에게나 똑같은 쾌락을 주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돈이라는 것이 우리의 쾌락을 재는 기준이 되려면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벤담의 유용성의 원리가 모든 쾌락과 고통들이 하나의 동일한 기준을 통해서 측정될 수 있는 공통적인 성질을 지닌다는 사실이 전제로 깔려있다면 그 전제에서의 난점으로 유용성의 원리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반면, 존 스튜어트 밀은 도덕성의 기초를 최고선 혹은 최대의 선과 동일시하고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규칙인 도덕성의 원리들은 최고선이라는 목적으로부터 도출된다. 이는 그가 벤담의 양적 쾌락주의와는 달리 쾌락의 질적인 차이들을 강조하는 질적 쾌락주의를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덕을 포함하는 인간의 행복이 목적 자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행복이란 쾌락을, 그리고 고통의 부재를 의미하며 불행이란 고통을, 그리고 쾌락의 결여를 의미한다."에서 볼 수 있듯 밀 역시 쾌락을 추구했지만, 밀에게서 쾌락은 벤담과는 조금 다르다. 어떤 성질의 쾌락이 다른 성질의 쾌락에 비해 더 많거나 더 적은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질 사이에는 우월함과 열등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질과 양과 결합된 쾌락은 다른 어떤 질과 양과 결합된 쾌락에 비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 예를 들어, 다량의 식탁 포도주가 소량의 최상급 포도주보다 열등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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