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

 1  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1
 2  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2
 3  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3
 4  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4
 5  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5
 6  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6
 7  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7
 8  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8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인문과학 이상의 그와 그녀 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상의 그와 ‘그녀’들
사람은 왜 사랑을 하는 것일까? 특히,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이란 존재는 무한한 상상력의 창고와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가의 여자 친구를 때로는 음악의 신이라는 뮤즈라 부르곤 한다. ‘사랑’이란 그 종류가 무수히 많아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고, 아직 원인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떤 신체의 화학적 반응에 의해 더 이상 ‘나’가 아닌 ‘나’가 되는 것이다. 과학에서 증명하지 못한 그 화학적 반응은 수많은 시대를 거쳐, 동서의 구분 없이, 남녀 구분 없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문학가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심지어 그들의 작품세계에 조차 그 거대한 손길을 뻗치고 있다. 따라서 ‘그녀’ 혹은 ‘그’들은(실은 모든 남성 예술가의 삶에 치중되어 있는 문학가의 남성 중심적 사고 때문인지 우리는 쉽게 여성 문인들을 찾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여성문인들은 그녀들의 작품으로 평가되기보다는 그녀들의 만들었던 사생활 때문에 쉽게 그녀의 남성들이 어떻게 그녀들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는지 평가하지 못하며, 수많은 남성편력은 남성문인들의 여성편력과는 다르게 헤프고 평가절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그’라는 보다는 ‘그녀’라는 하나의 표현만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른다) 작가들의 작품들에 종종 등장하고 그 열정 때문에 피폐한 삶을 꾸려가며 때로는 과감한 글을 써내기도 한다. John Lennon의 Yoko Ono에 대한 표현으로 사진작가 앞에서 스스럼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그녀를 꼭 껴안았던 사건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작가들은 그만큼 유수한 작품을 써내려 간다. 그리고 때로는 요절을 하기도 한다.(그것이 모든 이유라고 말할 수 없지만)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도 그런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가 거쳐 간 금홍, 권순옥. 변동림과의 시간동안에 지금의 우리가 아는 이상을 만들기에 충분한 작품을 썼으며, 그는 요절했기 때문이다.
이상은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통해서도 이미 우리에게는 낯설음의 대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특이한 것은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며, 그와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여성들이 아닐까 한다. 이상의 작품에서 여성이라 함은 절벽에서 허덕이는 남성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도구쯤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그려졌던 ‘그녀’들은 현실인가 가상인가에 대해 우리는 오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먼저 그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혹은 그의 인생을 잠깐이나마 같이 했던 ‘그녀’들의 직업(창부)이 비단 이상만의 독특함인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많은 작가들은 평범한 양갓집 규수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갖고 있는, 흔히 말해 끼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사랑하고, 간혹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는 한다. (이것은 비단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유명한 정치가나 군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영웅 Nelson을 보아라! 그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어가면서 까지 사랑했던 Lady Hamilton 역시 잠깐이나마 창부 생활을 했던 여자가 아니었던가) 이와 같은 기초를 두고 우리는 특이하지 않았던 창부와 예술가의 만남이 어떻게 창부와, 아니 ‘그녀’들과 이상으로의 만남으로 바뀌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던 당시 많은 여성들과 어울렸다는 이상의 인생 중 특히 그녀의 작품에까지 등장했던 세명의 여인-금홍, 권순옥, 변동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에게, 그의 작품에게 ‘그녀’들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등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것을 통해 본 이상의 정신세계를 들여다 볼까한다.
우리는 이상의 ‘그녀’들을 살펴보기 전에 유년기의 김해경과 이상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프로이드의 주장은 모든 남성은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함으로써 여성, 즉 어머니를 갈구하고,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여성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보자면 가족의 해체, 나아가 개인의 해체로까지 이어졌던 이상에게는 분명 다른 특이함이 있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이상, 김해경의 집안과 그의 출생, 유년시기를 살펴볼까 한다.
Ⅰ. 김해경, 이상이 되기까지
1910년, 대한제국의 치욕이 있던 그 해, 음력 8월 20일 그는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누이 김옥희-이상에게 도구로써의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 표현되었던 유일한 여성-의 증언을 빌자면, 물론 그 얘기는 들은 얘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3일 만에 울었다고 한다. 당상관을 지냈던 김병복의 둘째 아들 김연창과 박세창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곧 그는 자식이 없던 백부 김연필의 집의 양자로 들어갔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이상, 김해경의 유년시절을 얘기하자면 생부, 생모보다는 백부와 백모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사실의 김해경의 유년시절 이야기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많은 작가들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첫 작품을 시도한 것과는 달리 그는 청년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청년의 생각에 머물렀던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생부 김연창이 소년 김해경에게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가족의 해체로 그려지는, 사실 그의 작품에는 가족이란 것 자체가 없지만, 작품 속에서 남성은 언제나 힘이 없고 약한 존재이며, 실로 없느니만 못한 존재인 경우가 많다. 「12월 12일」이나 우리가 장차 살펴보게 될 「날개」, 「봉별기」,「동해」등에서 남성은 무능하게만 비춰지고 있다. 이것은 김연필의 도움으로 경성부 활판소에서 일했었지만 손가락 절단과 함께 빈곤의 껍질을 벗어나지 못했었던 생부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 김해경은 얽은 얼굴로 살아가던 아버지, 어머니와는 달리 매우 서구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천재적인 재능으로 이미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 어린왕자로 불렸다고 한다. 그의 용모가 어쨌든 이상은 백부의 도움으로 아주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무려 4년의 기간을 근무한다. 그가 받은 체계적 교육의 결과는 생부의 무지를 바라보는 눈이 되었던 듯싶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할 일 없는 부랑아로 인생의 저변을 헤매다 죽고 만다. 불효자로써의 죄책감과 방랑에 대한 그리움은 아마도 「12월 12일」에서 ‘업’과 ‘그’로 양분되어 그려진 듯싶다. 그가 자신을 작품 속에서 어찌 그렸는가는 차후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다시 김해경이 최초의 이성을 만나고, 또 이상이 되기까지의 그림을 그려보자.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지내던 그는 폐결핵 진단을 받게 된다. 당시의 폐결핵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AIDS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사망률의 상당히 높았으며, 폐결핵은 더 이상 사회생활을 불가능하게 할 만큼 치명적이었던 병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같은 병은 예술가들에게는 필수와 같이 여겨졌다고 한다. 희대의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이상에게는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작가로써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초기 폐결핵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백부의 사망이후 폐결핵은 더 이상은 알고 있는 것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지워버린 지 오랜 시간이 되었다. 백부의 사망이후 이상은 기수자리를 사임하고 약 1달간의 치료기간을 갖는다. 이미 이 시기 백부의 힘은 바닥을 드러냈으며, 생부는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백부의 집을 나와 가족과 지내게 된다. 하지만 이미 혼자이길 결심했던 이상은 단 15일 만에 가족들과의 동거를 뿌리치고 도망치듯 어딘가로 떠난다. 따라서 당시의 이상은 금전적 문제와 할게 정신적 문제를 동시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Ⅱ. ‘그녀1’ 금홍
금전적 궁핍과 문학적 자아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던 이상은 벗, 구본웅, 과 함께 배천온천으로 휴양을 떠난다. 그가 향했던 배천은 비록 소읍이기는 하지만 고려 상인들의 청결하고 매서운 분위기의 결백이 이루어놓은 아주 위생적인 온천 지대였다. 경기도 개풍군과 황해도 연백군 사이의 예성강 하류를 건너가면 연안 배천에 이르게 된다. 배천 온천은 일제시대의 일본인 취향에 따라 일본의 온천 분위기를 강조함으로써 서울 일대의 일본인, 조선인 상류 사회의 교외 유흥장소가 되었던 지역이다. 따라서 생산적 활동을 위해 떠났던 구본웅과 이상의 여행은 요양이 아닌 향락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은 그곳에서 일본에서 온 온천문학 쯤을 꿈꾸었지만 온천만큼이나 많았던 요정과 술집 사이에서 공상만을 했을 뿐 실제 이룬 것은 없었다.
사흘을 못 참고 기어 나는 여관 주인영감을 앞장세워 밤에 장고 소리 나는 집으로 찾아갔다. 게서 만난 것이 금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