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배경 수나라 1차 친입 수나라 2차
1.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배경
수나라는 통일 이전인 건국 초기에는 북수남공책 이라하여 북방에 대해서는 수비에 전념하는 한편, 남방의 잔존하고 있던 세력들을 일소하여 중원 통일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는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존재를 북방의 돌궐과 고구려로 보고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펴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으로 수나라는 돌궐을 이간시켜 동, 서로 분열되게 하고 또한 무력으로 정벌함으로써 돌궐을 복속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북동부의 고구려는 지속적으로 동돌궐과 제휴하여 수에 대하여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으며 중원 통일 이전에는 수나라와 통교하면서도 남조의 진과 선린관계를 구축하여 양면외교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나라로서는 고구려를 상당히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 수나라의 1차 침입
이러한 긴장관계를 먼저 깨뜨린 것은 고구려 측이었다. 고구려는 수의 북방정책에 일련의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하고 먼저 수나라의 군사력을 알기 위하여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리하여 598년 2월에 고구려의 말갈 기병 1만이 영주를 침공한 것을 시작으로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고구려의 영주 침공에 자극을 받은 문제는 598년 2월부터 4개월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598년 6월에 탁군에서 출발하여 고구려로 진격했다. 수나라 군대는 양면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여 본군인 육군은 요하를 건너 공격하기로 하고 수로군 6천은 산동의 동래항구에서 출항하여 대동강 어귀에 이르러 수나라 육군의 군량수송을 담당키로 했다.
수나라 군대가 요하에 닿았을 무렵, 요하는 7월 우기였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습지를 걷게 된 수나라 군사들은 이동속도가 떨어졌고, 후방에서 군량수송이 어려워지면서 굶주리는 병사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돌림병까지 돌아 환자가 대량 발생하면서 사실상 전쟁이 불가능해졌다. 수로군 또한 요동반도 남단 부근에서 갑자기 폭풍을 만나 대부분의 함선이 침몰되고 나머지 선박들은 모두 동래항으로 귀항해버렸다.
이리하여 수나라 군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악천후로 인해 병사의 8-9할을 잃고 퇴각하고 말았다.
3. 수나라의 2차 침입
7월의 장마는 고구려 군에게도 악조건으로 작용하여 고구려도 전쟁을 중단하고 수나라와 화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수나라의 수륙양군이 모두 퇴각하자 고구려는 즉각 사신을 파견하여 일전에 영주 침공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고 정식으로 사과하였다. 이에 수나라 문제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1차 전쟁은 완전히 종식되고 양국은 일시적으로 평화관계가 유지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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