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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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우자동차 사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노사 관계론
Report
- 대우자동차 사태 -
차례
1. 대우자동차의 역사
2. 대우 자동차의 부실 원인
3. 대우 자동차 사태의 추이
(1) 워크아웃과 해외매각 추진
(2) 포드의 인수포기
(3) 최종 부도처리와 노조의 동의서 제출
(4) 경영혁신위원회 구성과 노사교섭의 파행
(5) 정리해고 단행과 노조의 저항
4. 대우 자동차 사태의 토의
5. 결론
1. 대우 자동차의 역사
대우그룹이 자동차사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7월 신진공업의 산업은행 지분을 인수하면서부터이다. 1983년 사명을 대우자동차로 바꾸고 1986년 처음으로 GM과의 합작품인 르망을 생산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GM이 대우차의 해외수출과 신차개발을 막는 등 간섭이 심해지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1992년 10월 결국 GM의 지분을 전량 인수해 독자경영에 돌입했다. 그 이후 세계경영으로 이어지면서 영국의 연구소를 인수하고 인도, 중국, 루마니아,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등 해외공장을 차례로 가동하였으며 국내에서도 군산공장을 새로 짓는 등 확장경영을 하게 된다.
1996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등 3개 차종을 동시에 출시하여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대우차를 세계 20위 내에 드는 자동차메이커로 급부상시키게 된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의 한파가 몰아친 1998년에 GM과의 제휴를 통한 외자유치에 실패하게 되면서 1999년 8월 대우그룹의 해체와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간다.
2. 대우 자동차의 부실 원인
대우차 부실의 원인은 무언가 심오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 품질, 생산비 등 기본적인 경쟁력 부문에서는 턱없이 역량이 부족함에도 외부자본을 무리하게 동원하여 외연적인 확장에만 열을 올린 데 그 원인이 있다.
3. 대우 자동차 사태의 추이
(1) 워크아웃과 해외매각 추진
대우차 부채규모는 작년 상반기말 현재 18조 2천억 원이었고 자본은 마이너스(-) 4천 4백억 원이었다. 영업손실은 상반기만 3,190억원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금융비용까지 합칠 경우 그 손실액은 9,294억원에 달하여 매일 51억원 이상 손해를 보며 기업을 운영하는 꼴이었다. 대우차 내부에서는 대당 판매손실이 170만원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경제논리로만 보자면 이런 상태에서는 당장 공장가동을 중단하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손해와 사회적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그런데 시장논리를 그토록 강조한 정부가 이러한 막대한 경영부실에도 불구하고 워크아웃을 통해 대우차 회생을 결심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막대한 부실규모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