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팡세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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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파스칼 팡세 레포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팡세』에서 읽은 인간.
1. 우아한 비관주의자
우리가 사는 ‘지금’은 과거보다 낫다. 역병에 걸리지 않고, 비새는 집에서 잠을 자지 않고 일찍 결혼할 필요도 없다. 한데, 왜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는(내면적으로) 느낌은 들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여전히 사건과 좌절된 야심과 상심과 질투와 불안과 죽음” 앞에 여전히 좌절한다.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이 내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처음 만난 「팡세」는 지루했다. 첫 내용(1-105, 판단의 왜곡)을 보며 공감하고, 작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난다는 구절에 줄을 그었다. 하지만 끝없는 반복과 강조, 뒤틀기가 이어졌다. 긍정의 문장은 드물었다. 나는 책 귀퉁이에 ‘비꼬기의 천재, 파스칼’ 이라고 적었다. 두 번째 메모에는 ‘사람들이 왜 문학작품을 쓰는지 알겠다’라고 적었다.
한 다큐멘터리 EBS 다큐프라임 「언어발달의 수수께끼-언어가 나를 바꾼다」편 중에서.
에서 인터뷰를 했다. “전혀 모르는 타인과 10번의 만남이 주어진다면, 몇 번째 만남에서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2번이나 3번이면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타인이 당신을 몇 번 만나야 당신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5번 이상이라고 답했다. 자신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파악하기 어려우며 어두운 일면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는 나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건 불공평하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며 타인은 나를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데, 우리는 서로 다르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재료와 같은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편의점의 삼각김밥이나 다를 바 없다. 똑같다. 인터뷰 영상 후 심리학자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자신이 한 것은 최고로 여기며 타인이 한 것은 최악으로 여깁니다.”했다. 같은 성분에, 같은 방식에, 비슷한 방법으로 자라나는 인간인데 우린 우리 안에 갇혀 있다. 너와 나, 같지만 다른 이것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해 파스칼은 “자애심과 인간적 자아의 본질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데 있다. ~ 우리가 그들을 속이고 또 우리가 받기에 합당한 것 이상으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것도 옳지 않다.” 「팡세」, 파스칼, 민음사, 99-(100), 68~69쪽.
「팡세」를 읽은 후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었다. 큰 의미에서 보자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팡세」의 일부분을 가져와 해석한 주석이라고 볼 수 있다. 확실히 파스칼의 말보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이 쉽게 들렸고, 「팡세」를 다시 보게 했다.
“「팡세」에서 파스칼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불쌍하고, 무가치한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를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매력적인 고전주의 시대의 프랑스에서 그는 우리를 향해서 행복이란 환상일 뿐이라고(“세계의 무익함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자체가 아주 무익한 것이다”), 오히려 슬픔이야말로 표준이라고(“만약 우리의 상태가 참으로 행복하다면, 굳이 행복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망상이라고(“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공허하고도 불결한가”), 우리는 무익한 동시에 성미가 급하다고(“우리가 하찮은 것에 위안을 받는 까닭은, 우리가 하찮은 것에 분노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람조차 우리를 내습하는 무수한 질병 앞에서는 결국 무력한 상태가 된다고(“파리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우리의 몸을 파먹을 수 있다”), 모든 지상의 제도는 부패했다고(“무엇보다도 더 확실한 것이 있다면, 사람이 언젠가는 약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터무니없는 경향이 있다고(“우리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왕국들이 얼마나 많은가!”)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상황의 절망적인 사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라고 파스칼은 주장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데에서 시작된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청미래, 194~195쪽.
파스칼의 어투가 비꼬는 투라 불편하다고 여겼던 부분은 실상은 허망한 희망을 제거한, 담백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파스칼의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누구도 이곳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걸 말함으로써, 우리에게 쉽게 행복을 약속하는 현실은 거짓이라고 그것이 인간을 절망으로 넘어뜨린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나의 결함은 타인이 내게 저지르는 결함과 같다고 말한다.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추악하고 단순하고 멍청한지 깨닫는 것이 나를 아는 일이라고 설명하면서 나를 아는 것이 타인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알랭 드 보통은 「팡세」를 “높은 건물의 난간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는 능력으로 말하면, 내면의 아름다움이며 긍정적 사고방식이며, 그리고 숨어 있는 가능성의 깨달음에 관한 그 어떤 감상적인 자기 계발서적보다도 오히려 「팡세」쪽이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같은 책, 195쪽.
고 말했다. 차라리 우아한 비관주의자가 허망한 희망보다는 낫다는 것이다.